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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기초 성경 강해 (구약성경)/에스라

에스라 9장 - 성문 기초 성경 강해 -

실천하는 믿음 2025. 7. 3. 07:29

실천하는 믿음 Practical Faith와 함께 하는 

성문 기초 성경 강해입니다. 

 

에스라 편입니다. 

 

 

자 그러면 9장 시작합니다.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옷을 찢고 기도를 드리는 에스라가 나오는 에스라 9장.

먼저 본문입니다. 

 

1절부터 18절입니다. 

 

1 이러한 일들을 마친 다음에, 지도자들이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마저도, 이방 백성과 관계를 끊지 않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이 하는 역겨운 일을 따라서 합니다.
2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또는 며느리로 맞아들였으므로, 주변의 여러 족속의 피가 거룩한 핏줄에 섞여 갑니다. 지도자와 관리라는 자들이 오히려 이러한 일에 앞장을 섭니다."
3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다.
4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동안에, 그들은 포로로 잡혀 갔다가 되돌아온 백성이 저지른, 이렇게 큰 배신을 보고서, 나에게로 모여들었다.
5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로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 때가 되었을 때에 일어나서, 찢어진 겉옷과 속옷을 몸에 그대로 걸치고,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서, 주 나의 하나님께
 
 
6 기도를 드렸다."하나님, 너무나도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하나님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우리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은 하늘에까지 닿았습니다.
7 조상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 너무나도 큽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왕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여러 나라 왕들의 칼에 맞아 죽거나 사로잡혀 가고, 재산도 다 빼앗기고,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8 그러나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비록 잠깐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가운데서 얼마쯤을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거룩하게 여기시는 곳에, 우리가 살아갈 든든한 터전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서 생기가 돌게 하시고, 잠시나마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9 우리가 종살이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종살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페르시아의 왕들에게 사랑을 받게 하여 주시고, 또 우리에게 용기를 주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곳을 다시 쌓아 올리게 하시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이처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10 우리의 하나님,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여 주시는데, 주님의 계명을 저버렸으니, 이제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11 주님께서는 일찍이, 주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키셔서, 우리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은, 이방 백성이 살면서 더럽힌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사는 자들이 역겨운 일을 하여서, 땅의 구석구석까지 더러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12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지도 말고, 그들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강해져서, 그 땅에서 나는 좋은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우리 자손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려면, 그 땅에 있는 백성이 번영하거나 성공할 틈을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3 우리가 당한 일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와 우리가 저지른 크나큰 잘못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비하여 가벼운 벌을 내리셔서, 우리 백성을 이만큼이나마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14 그러므로 다시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아야 하였습니다. 역겨운 일을 저지르는 이방 백성들과 결혼도 하지 않아야 하였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분노하셔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리신다고 해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15 그렇지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은 너그러우셔서 우리를 이렇게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진정,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주님께 자백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감히 주님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본문 요약들어갑니다. 

- 2차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왔다

- 이들은 1차 귀환자들이 이방인들과 타협을 하고 결혼을 통해 연합하는 상황을 보고했다

- 에스라는 슬픔 속에서 기도를 했다

 

자 이제 내용을 보도록 합니다. 

 

1) 지도자들이 보고를 하다

에스라 8장에서

2차 귀환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온 열방을 대신해서

그들이 드린 예물을

하나님께 올리고 나서

열방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이제 원래 계획대로

진행을 하면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의

내용을 따라서 

유프라테스 강 서쪽을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다스릴 판관들과 지도자를

세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참된 예배자들이

왕의 명령을 따라서

페르시아 서부를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가르치고 그 법으로

분별을 해주어야 하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의 시작부터

큰 차질이 생겼음이

9장에 나옵니다. 

 

1절 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마친 다음에,

지도자들이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마저도,

이방 백성과 관계를 끊지 않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이 하는

역겨운 일을 따라서 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실행해야 하는 

예배자가 되었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지어 1차로 귀환한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마저도

에스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방인들과 타협하면서

역겨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레스 왕때부터

아닥사스다 왕 7년차, 

즉, 에스라가

2차 포로 귀환자들과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햇수를

계산하면 약 72년입니다. 

 

72년의 시간이 지나가자

귀환자들 중에서

인본주의로 타협한

이들이 나온 것이 됩니다. 

 

여기서

이방인들이 행하는

역겨운 일이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을 섬긴다고 하면서

신의 마음을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비위를 맞춰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신의 이름과 가르침으로

정당화하고 진리로

포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원래 귀환자들은

예배자의 마음을 가지고

오직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따라가면서

이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들입니다. 

 

하지만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보다

인본주의를 따라서 계산하는

세상의 가치관을 신뢰하고

이것을 따라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의지하는 믿음의 생각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 

사회적, 문화적 타협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인본주의와 타협한

예배자들이 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보기에는

여전히 귀환자이고

귀환자들의 후손들이면서

그들의 지도층이니

백성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일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산다고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사장으로

제사를 인도하고 

레위인으로 성전에서

성전의 일을 감당하고

예물을 드리고 

절기도 지키고 있습니다. 

 

겉모습과 하는 말을 보면

처음 귀환자의 모습 그대로

예배자이고 오히려 더 깊은

신앙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예배자가 아닙니다. 

처음 예배자의 마음을

70년이 지나는 동안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켰던

지도자들은 이 상황을

늘 안타깝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말에는 이미 믿음의 말로는

설득하기가 힘든 고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본주의는

정략결혼의 형태로

나타났음이

2절에 설명되고 있습니다.  

 

2절 입니다.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또는 며느리로

맞아들였으므로,

주변의 여러 족속의 피가

거룩한 핏줄에 섞여 갑니다.

지도자와 관리라는 자들이

오히려 이러한 일에

앞장을 섭니다."

 

글만 두고 보면

마치 이방인과의 결혼이

엄청난 죄악인 것처럼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저 이방인과의

결혼의 문제로,

순수 혈통을 지키는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조상들,

심지어 믿음의 사람들도

이방인 여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당장 신약 성경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말, 라합도

이방여인이고

롯기의 주인공인 롯도

이방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에스라 시대에

귀환자 지도층이

왜 이방인과의 결혼을

추진하였는지

그 이유를 주목해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이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고 

이방인 딸들을

자신들의 아들들과

결혼시킨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결혼을 통해서 자신들의

인본주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이

"아들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행하는

모습이 아니라, 

"인맥을 만들어서

생계에 도움이 되고

내 삶을 풍성하게 하고

인본주의가 의지하는

생명력이 풍성해지도록"

인본주의의 지혜를 

실천하는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이방인과의 결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결혼을 추진하고 실행한

마음의 근본부터 

어긋나 버린 것이 됩니다. 

 

에스라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따라

하나님의 법을 집행할

판사들이나 

그 법을 가르칠 교사들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이미 믿음을 버리고

인본주의와 타협하는

신앙을 가진 이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일에

이들이 판사나 교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고 집행한다면,

그 마지막 모습은

하니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본주의의 향연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귀환자들이 

같은 길을 따라서,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타협한 예배자들이 되었으니, 

에스라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실망이 큰 상황입니다. 

 

2) 에스라는 기도하고 예배자들은 나아오다

3절 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다.] 

 

당장 에스라의 실망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앞에 살핀 것과 같이

에스라는 지극히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는 인본주의의 계산,

사람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에서 나오는 계산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해 속에서도

그는 인본주의 계산을 따른

인본주의의 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믿음을 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의 말과 설득이나

법적인 조치로

해결된 상황이 아님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이 일을 바로잡으라고

말하는 것은 

"먹고 살기를 포기해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에스라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무슨 조치를 강제로 취해서

상황을 바로 잡을지라도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불러서 설득하거나

강제로 어떤 법을

집행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 앞에서

엎드립니다. 

 

그리고 이 모습에

진정한 예배자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이들이 반응합니다. 


4절 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동안에,

그들은 포로로 잡혀 갔다가

되돌아온 백성이 저지른,

이렇게 큰 배신을 보고서,

나에게로 모여들었다.] 

 

에스라가 슬픔 속에

무너졌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에스라의 슬픔을

이해하고 반응한 사람들이

에스라에게 모여들었다고

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2차 귀환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모였을 것입니다. 

에스라의 부름에 반응하고

4개월의 여정 동안에

예배자의 훈련을 받고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왜 슬픔속에 잠겼는지를

이해한 사람들이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한 사람들인데, 

그 두려움의 근본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인본주의를 택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변함없는 사랑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일인지를

이해하고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4절은 그래서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배신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보다

인본주의 계산이 중요해서

택한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5절 입니다.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로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 때가

되었을 때에 일어나서,

찢어진 겉옷과 속옷을

몸에 그대로 걸치고,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서,

주 나의 하나님께]
  
6절 입니다.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너무나도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하나님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우리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은

하늘에까지 닿았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때까지

그저 황망하게 앉아있다가

저녁이 되자 정신을 차리고

그 모습 그대로 기도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도의 첫 마디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부끄럽다는 말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과 자비를 찬양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타가 공인한 사람들이

막상 실생활에서는

인본주의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이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마치 모든 사람의 죄를

자신의 죄로 감당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70여년의 세월 동안에

귀환자들이 타협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용납하셨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아담의 죄악 이후로는

인본주의 가치관이

주류가 된 세상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보다

이 인본주의의 가치관이

더 진리이고 생명이고

길이라고 믿고 사는 삶을

자연스럽게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이해하신 분이시지만, 

그래서 인류를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의 근본이 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즉, 하나님의 법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지금 에스라가

맞이한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는

좌절이 되고

절망스러운 상황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실 수 있는 상황이자,

진정한 예배자로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시는

부름의 날이 됩니다. 

 

에스라도 처음 보고를

들을 때는 엄청난

절망 속에 좌절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제 그 모습 그대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는

인본주의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죄로 인식하고 이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에스라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니, 

예수님의 모습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3) 에스라의 기도

7절 입니다. 

[조상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

너무나도 큽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왕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여러 나라 왕들의 칼에

맞아 죽거나 사로잡혀 가고,

재산도 다 빼앗기고,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라는 7절에서

모든 죄의 근본은

인본주의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보다

더 생명처럼 여긴 것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인본주의의 결과는

칼에 맞아 죽거나

잡혀가고 재산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백성이 

멸시당하고 수모 당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모습이 

반복되고 있고

반복될 것을 

간파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8절 입니다. 

[그러나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비록 잠깐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가운데서 얼마쯤을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거룩하게 여기시는 곳에,

우리가 살아갈 든든한

터전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서

생기가 돌게 하시고,

잠시나마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상황에서도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9절 입니다. 

[우리가 종살이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종살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페르시아의 왕들에게

사랑을 받게 하여 주시고,

또 우리에게 용기를 주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곳을

다시 쌓아 올리게 하시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이처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성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생명으로 믿고 나아올 길을

공개적으로

열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10절 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여 주시는데,

주님의 계명을 저버렸으니,

이제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에스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인본주의를

따라서 예배자의 길을

떠나가 버린 상황을

말합니다. 

 

결국

주님의 계명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귀환자들의 리더들이

앞장서서 하나님보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만을 챙기는 

삶을 추구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4) 에스라의 기도 2

11절 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주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키셔서,

우리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은,

이방 백성이 살면서

더럽힌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사는 자들이

역겨운 일을 하여서,

땅의 구석구석까지

더러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11절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인본주의를 따라서 산

가나안 사람들이 행한 일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더러운 일들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숭배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기 자식을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해서라도

자기 삶에 생명과 축복을

추구하였습니다. 

 

또한 이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인본주의를 따르지

않은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나안 문화입니다.  


12절 입니다.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지도 말고,

그들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강해져서,

그 땅에서 나는

좋은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우리 자손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려면,

그 땅에 있는 백성이

번영하거나 성공할 틈을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나온대로

하나님이 이들과의

결혼을 금지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가나안 사람들은

믿음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인본주의보다

앞에 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믿음을 따르려는

사람들마저도

인본주의로 끌어들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영원히 시도하는

사람들이기 가나안 사람으로

대표되는 인본주의의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런 인본주의가

성공을 가져다주고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겉모습을 보고 

믿음을 따라가려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인본주의로 돌아설 것을

경계하는 말씀이 됩니다. 

 

이 인본주의와 경계하고

선을 긋고

분리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받고 그 땅에

풍성한 생명을 누리면서

영원히 사는 조건임을

에스라의 기도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더 큰 축복과 

진짜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삶은

믿음을 따라가는 삶에

있음을 강조하고

이것을 위해서 철저하게

인본주의와 분리되는

삶을 추구할 것을

하나님이 명령이 됩니다. 

 

13절 입니다. 

[우리가 당한 일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와

우리가 저지른 크나큰 잘못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비하여

가벼운 벌을 내리셔서,

우리 백성을 이만큼이나마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한

백성이자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됩니다. 

 

이미 인본주의를 택하고

하나님을 버린 삶을

택한 사람들은 

그 인본주의를 따라서

나오는 성공과 실패와

희노애락을 누리고 사는데

하나님도 이것을 그냥

놔두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인본주의를 택하고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법을 따른 것이 되니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 됩니다. 

그리고 이 불법은 

심판을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에스라는 

하나님을 버린 이들을

하나님이 완전히 버리고

사형에 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심판하신 것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에스라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 됩니다. 


14절 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아야 하였습니다.

역겨운 일을 저지르는

이방 백성들과 결혼도

하지 않아야 하였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분노하셔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리신다고 해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에스라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와 철저하게

분리되겠다는 결단이

필요한데 그 실천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정략적으로 맺은

결혼의 무효화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한 몸이 되는 섭리입니다. 

내가 믿음이 아닌

인본주의를 따라서

인본주의를 가르치는

배우자와 한 몸이 되버리면

이미 믿음을 버린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지금 이 결혼에 대한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에스라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 입니다. 

[그렇지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은 너그러우셔서

우리를 이렇게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진정,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주님께 자백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감히

주님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15절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자비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고백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자비를 베푸시고

이 자비를 그 백성들에게

이해하게 도우시는 

하나님이 지금 이 상황에도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에스라고 알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자신들이 결단을 하고

인본주의와 분리되는 삶을

추구할 지라도 

결국 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이 모든 것을 결정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에스라는 어떤 결단을

할 지라도 사람이 자기 의지와

행위로 100% 의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저지를 죄를 

자기 힘으로는 깨끗하게

할 수 없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자비가

답임을 알고 구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자, 에스라 9장에서 이것만은 기억합시다!

1) 유대인 지도자들이 에스라에게 지도층의 정략 결혼의 문제를 알려주었다

2) 에스라는 너무나도 실망이 커서 옷을 찢고 주저앉았다

3) 이 상황을 보고 주님을 경외하는 귀환자들이 에스라 주변에 모여들었다

4) 저녁 제사 시간이 되자 에스라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