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잘 몰라도 별도의 공부를 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Practical Faith가 도와드리는
성문(성경의 글) 기초 성경 강해, 마태복음 편입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을 알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드립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1장입니다.
출발!
먼저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21장 1절부터 17절까지입니다.
1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 와서 감람산 기슭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이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가면 나귀 한 마리가 나귀새끼와 함께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들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주님께서 쓰신다고 하여라. 그러면 곧 보내 줄 것이다.'
4 이것은 다음과 같은 예언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5 '시온 사람들에게 말하라. 보라! 너희 왕이 오신다! 그가 겸손하여 나귀를 탔으니 어린 나귀, 곧 나귀 새끼이다.'
6 제자들이 가서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7 나귀와 그 새끼를 끌어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등에 펴자 예수님이 올라타셨다.
8 많은 군중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기도 하고 나무가지를 꺾어 길에 깔기도 했다.
9 그리고 예수님을 앞뒤로 에워싸고 가는 군중들은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찬양을!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10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시내가 떠들썩하며 '이분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군중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2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13 그리고 그들에게 '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성경이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14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다.
15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과 성전에서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16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소?' 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렇다. 너희는 '어린 아이와 젖 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을 완전하게 하셨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 베다니에 가셔서 밤을 보내셨다.
먼저 1절부터 17절 스토리 정리 합니다.
1)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2) 사람들이 환호하고 호산나를 외쳤다.
3) 예루살렘 사람들은 놀라서 누구인지를 물었다.
4) 예수님은 성전을 정리하시고는
성전에 있는 병자들을 고치셨다.
5)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분노를 소리치는 아이들에게 풀면서 화를 냈다.
6) 예수님이 선지자의 글로 그들에게 반박하셨다.
자 여기서 핵심 구절만 뽑습니다.
▶ 21장 10,11절 입니다.
10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시내가 떠들썩하며 '이분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군중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역시 핵심단어 3개를 뽑았습니다.
1) 온 시내가 떠들썩했다
개역개정에는 소동이 일었다고 나옵니다.
같은 표현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났을 때에 쓰였습니다.
좋은 표현이 아니라
우리끼리 조용히 잘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불쾌한 소동이 일어났으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반응이 됩니다.
2) 이분이 누구요?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를 외치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고
그렇게 부르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그 자리에 있도록 만든
자기 마음의 법에만 관심이 있지
예수님이 선포하던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말이 됩니다.
3)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
대답하는 무리의 답변입니다.
소리를 지를 때는,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라고 합니다.
막상 예루살렘의 높은 이들이 누구냐고 물으니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말을 못하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의 법이 되지 못한 사람이
그리고 그런 결단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자 다음 핵심 구절 입니다.
▶ 21장 15-17절 입니다.
15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과 성전에서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16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소?' 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렇다. 너희는 '어린 아이와 젖 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을 완전하게 하셨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 베다니에 가셔서 밤을 보내셨다.
그리고 역시 핵심단어 3개를 뽑았습니다.
1)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온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화가 났습니다.
성전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기적을 보고
화가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성전이 자기들의 현재 누리는
성공적인 삶을 유지하는 터전이라는
내 마음의 법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법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는데
이건 그들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치유받은 병자와 성전에 모인 이들은
다들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한 분노가 엉뚱한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2) 아이와 젖먹이의 찬송을 완전하게 하셨다
사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이라고
외쳐야 할 사람들은 성경을 안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어야만 합니다.
온 예루살렘이 되었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들은 말씀을 알면서도
자기 마음의 법을 따라서 예수님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 찬양의 소리를 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찬양을 해야 하는 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지 않으니
아이들의 입에서 그 찬양이 나오도록 하시고
또 그 찬양을 완전하게 하십니다.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라는 찬양의 외침이
진짜로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3) 베다니에서 머무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머물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은 지금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그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마음에 두지 않으니
예수님을 거부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포도원 소작인들의 비유와 같지요.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부터 32절입니다.
18 다음 날 이른 아침, 성으로 들어가실 때 예수님은 시장하셨다.
19 마침 길가에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가까이 가셨으나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이 그 나무를 향해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하시자 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
20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놀라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갑자기 말라 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21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내가 그 무화과나무에게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산을 향하여 '땅에서 들려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
22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
23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하고 따져 물었다.
24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나도 한 가지 묻겠는데 너희가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에게서 왔느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왔느냐?' 그러자 그들은 '만일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두렵다.' 하고 서로 의논하다가
27 '우리는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가 먼저 맏아들에게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하였으나
29 그는 '예,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만 하고는 가지 않았다.
30 그가 둘째 아들에게도 가서 같은 말을 했는데 그는 '싫습니다.' 하고 거절하였으나 뒤에 뉘우치고 갔다.
31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에게 순종하였느냐?' 그들이 '둘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세무원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요한이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쳤으나 너희는 믿지 않았고 세무원과 창녀들은 믿었다. 그리고 너희는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먼저 18절부터 32절 스토리 정리 합니다.
1)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마르게 하셨다.
2) 그리고 믿음으로 구하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물었다.
4)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한의 권위를 물었고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5)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말해주시면서
자신의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주셨다.
자 여기서 핵심 구절만 뽑습니다.
▶ 21장 21,22절 입니다.
21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내가 그 무화과나무에게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산을 향하여 '땅에서 들려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
22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핵심단어 3개를 뽑았습니다.
1)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내가 누구인지를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아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도 믿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두가지가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의 법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나를 자녀로 삼었음을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 무화가 나무에게 한 일
예수님은 열매가 없던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라 죽게 하십니다.
늘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이 허기에 분노조절을
못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내 마음의 법이 되어진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완벽하게 가지면,
남들이 나를 무엇이라고 호칭하고
대접하든지 (군중은 예언자, 예루살렘은 듣보잡인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심지어 이런 극단적인 기도도
들어주신다는 예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3)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면 다 받는다
다시 말하지만 무슨 정체성을 가지고
기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입성한 예루살렘의 성전은
기도의 집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의 법이 되면서
나온 정체성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을 따라서 나온 정체성을 가진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에 많은 병자들이 있었지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대제사장들도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제사를 드려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고쳐준 것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이 법이 되어서 그 정체성으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의심없이 믿은 예수님의 기도만이
이들을 치유해주었지요.
그래서 기도할 때에 믿는다는 말씀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정체성을
믿고 응답해주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를
의심없이 믿고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됩니다.
또한 이 믿음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법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가득차서 오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말해주십니다.
이 일은 사람의 지혜와 공부를 통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되는 일입니다.
자 다음 핵심 구절 입니다.
▶ 21장 23,31-32절 입니다.
23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하고 따져 물었다.
31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에게 순종하였느냐?' 그들이 '둘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세무원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요한이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쳤으나 너희는 믿지 않았고 세무원과 창녀들은 믿었다. 그리고 너희는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핵심단어 3개를 뽑았습니다.
1) 권한을 주었느냐?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에게
와서 던진 질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말로는 하나님에게
받은 권한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에게 인정받은 권한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한은 맏습니다만,
이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더 의지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마음의 법이
그렇게 해석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의 질문에는 모른다고 답변합니다.
(27절 참조)
자기들의 권한은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는
자기들의 믿음의 고백이 됩니다.
대세사장들과 장로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세웠다고 말하면서
온갖 위엄과 거룩한 표정을 지어도
막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종교정치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한은 하나님에게 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권한을 사람들을 통해서
인정받고 확인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예수님의 마음에 가득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온 정체성이고
이 정체성을 따른 권한에 능력과
하나님 아버지의 응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세무원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경멸하고 저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 대제사장이나 장로들보다
먼저 반응했고, 기뻐하면서 받아들인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성전에서 저주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칠 때에는 "싫다!"라고 말하던 이들이
바로 세무원과 창녀들입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른
죄의 용서의 세례를 선포하자 가서
마음을 돌이키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하지 않다가
마음을 돌이켜! 순종한 둘째 아들이 됩니다.
3) 너희는 보고도 뉘우지치 않고 믿지 않았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첫째 아들처럼 순종한다고 하고는 안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외치고,
하나님의 자비의 자리(속죄소, Mercy Seat)에
백성을 대표해서 나가는 이들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외치면서도
막상 자기 삶에서는 자기 마음의 법을 따라서
그 법을 따라서 온 세례요한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세례요한의 선포에 자기들이 그렇게
경고하고 설득해도 회개하지 않던 세리들과 창녀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룰
억지로 찾아냅니다.
그리고 이제는 같은 이유로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절 까지 달려볼까요!
33절부터 46절까지입니다.
33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다. 그는 포도원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틀을 놓고 망대를 세운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여행을 떠났다.
34 포도철이 되어 주인은 자기 몫의 포도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냈다.
35 그러자 소작인들은 종들을 잡아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다른 하나는 돌로 쳤다.
36 주인은 처음보다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으나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37 마지막으로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내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경하겠지' 하였으나
38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이 사람은 상속자이다. 자, 죽여 버리고 그가 받을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하고 서로 말하며
39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 죽였다.
40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 악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고 포도원은 제때 열매를 주인에게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맡길 것입니다.'
42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신기한 일이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했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둔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백성이 그 나라를 얻을 것이다.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질 것이며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한 말인 줄 알고
46 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에 두려워서 잡지 못하였다.
먼저 33절부터 46절 스토리 정리 합니다.
1) 예수님이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말해주셨다.
2)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졌다고 믿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로부터 빼앗기게 될 것을 말하셨다.
3)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지만
군중을 두려워했다.
4) 예수님은 누가 하나님이 보기에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그 권위를 행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시고 있다.
자 핵심 구절 입니다.
▶ 21장 42-43절 입니다.
42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신기한 일이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했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둔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백성이 그 나라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핵심단어 3개를 뽑았습니다.
1)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
건축자들은 전문가들입니다.
그런 전문가들이 집을 지을 때에
모퉁이 돌은 커녕 그냥 바닥에 깔
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서 버린 돌이
그 집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받치는
모퉁이 돌이 되었음을 말하십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들이 전문가로써의
보는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께서 행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포도원의 비유로 설명하면,
포도원 소작인들은 전문가들입니다.
자기들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포도원을 경영하고 그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인의 뜻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실력과 권위로
자기들끼리 뭉쳐서 포도원을 경영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주인이 보낸 주인의 뜻을 전하는 이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주인이 보낸 아들의 권위도
포도원 전문가인 자기들의 눈으로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존재로 보일 뿐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종교전문가로써
그 성전을 잘 경영하면서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낸 아들의 권위도
자기들이 보기에는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던져버린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됩니다.
2) 주께서 행하신 것이고 신기한 일이다.
예수님은 이 일은 주님이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종교정치전문가이면서
성경박사들입니다.
이들의 종교와 신학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은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 가득하고
이것을 지키고자 목숨을 건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는
누가봐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보다
권위로나 학위로나 정통성으로나
위엄으로나 배경과 이력으로나
훨씬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3) 그 나라의 합당한 생활을 하는 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의 법이 되어서
그 법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가까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됩니다.
무화가 나무의 기적을 보고
그 뜻을 이해하고 행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사는 이들이
그 법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 보는 이들은
화가 날 일입니다.
자 마지막 핵심 구절 입니다.
▶ 21장 44절 입니다.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질 것이며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역시 핵심단어 3개를 뽑았습니다.
1) 이 돌
예수님을 말합니다.
앞에 나온 모퉁이 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 그 차체입니다.
2)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진다
이 돌로 인해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듣고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은
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난다는 말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말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내 마음의 법으로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거부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걸려넘어지는 순간
자기들의 정체성과 권위를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다른 것이 두었음이 드러나니
그 거짓과 위선이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3) 사람 위에 떨어지면 가루를 만든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사람에게 떨어지면
그 법을 따라서 지켜보는
모두가 함께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지금 자기 정체성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들의 지도자라고
자부하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권위가
예수님의 자비의 법을 만나자
가루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들 속이 드러나는 부끄러움을 당하고도
예수님을 잡아가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살고
말씀을 안다고 하는 신앙인이라면
자기 정체성과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늘 확인하고 점검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꼭 알아야 할 기초 핵심은,
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2)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 호산나!"를 외쳤다.
3)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경계했다.
4)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고 병자를 고쳐주셨다.
5) 베다니에서 무화과 나무를 통해서 정체성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다.
6) 성전에서 권위 논쟁과 비유를 통해서도
올바른 정체성이 자기 생명을 좌우함을 가르쳐주셨다.
7) 사람의 마음의 법과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충돌하고 있다.
이것이 되겠습니다.
자 오늘은 마태복음 21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22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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