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여섯 번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이미할례가 특유의 높은 톤으로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음. 시작합니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선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네가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위선자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길거리에서 하듯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3 너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너의 착한 행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에게 나타내려고 회당과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7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8 너희는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쓸데없는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신다.[
마태복음 6장 1절-8절]"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살몬이 말하자 이미할례가 쑥쓰러운 듯이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앞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율법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지요.
이제 유대교의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부는 것은 율법에서 나온 우리의 전통이지요.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라는 법은 율법에 있습니다.
하지만 나팔을 불라는 것은 율법의 해석에서 나온 전통이지요.
또 구제의 율법의 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여러 선배님들에게 이 부분을 질문해 보았지요.
"왜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부나요? 언제부터 이렇게 했던 것입니까?"
하지만, 다들 답이 달랐습니다.
공통되는 답은 조상들의 지혜에서 나온 전통라는 말이었지요.
그래서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또 현실적인 대답을 주신 분도 있었지요.
이 전통이 없어지면 구제 헌금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셨지요.
사실 자기 옆집에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냥 먹을 것을 주면 됩니다.
길에서 도움을 거지를 보았다고 합시다.
그냥 가진 돈이나 음식이나 옷을 나누어주면 되지요.
회당 앞에서 아니면 거리에서 나팔을 불고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시간 낭비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큰 금액도 아니니 욕만 먹겠지요.
그러니 오늘날 이 나팔을 부는 전통의 의미는 이것이지요.
큰 금액의 구제를 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신앙심을 인정받지요.
또 이것을 통해서 구제의 율법을 완성한 인증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를 쌓아가지요.
그렇게 제사장들과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의 칭찬도 받고 복도 받고 의도 쌓는 전통이 되었지요.
오늘 오는 길에 나팔 소리를 들으신 분들도 계시지요?
이 전통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살몬이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가진 사람에게 구제는 이런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고 행하는 실천이지요.
하나님이 태양 빛을 모두에게 비추어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는 사람도 똑같이 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삶의 세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자비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진 것을 태양 빛을 비추듯이 비추는 것이지요.
모세님이 전해주신 율법의 구제를 보십시오.
밭에 추수에 일부를 남기라고 합니다.
과부나 고아나 방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지요.
또 , 일년 소산의 십일조를 이웃과 나누라고 하십니다.
레위인, 과부, 고아, 방랑하는 이들과 나누라고 하셨지요.
7년 마다 농사를 하지 않고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그 열매를 아무나 가져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내 삶에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나눔을 말하고 있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제의 율법의 완성은 하나님의 자비로 내가 나누어 줄 때에 완성됩니다.
이어지는 기도도 같은 흐름이지요.
회당과 큰 거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전통을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외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음, 그 말씀에 대해서 제가 한 마디를 보태지요.
제 책인 [너도할례의 거룩한 성전 기도의 7가지 법칙]에 나온 내용입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누구나 기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세리가 성전에서 큰 소리로 기도를 할 수 있지요.
제사장들이 큰소리로 기도를 해도 됩니다.
남자던 여자던 기도를 하면 그러려니 하지요.
하지만 회당과 거리는 다릅니다.
회당에서 기도를 하면 모두의 주목을 받지요.
사람들은 지켜보면서 그 내용을 듣게됩니다.
그리고 평가를 받지요.
큰 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또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기도를 해야 인정을 받지요.
역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가 회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이러면 사방에서 "입다물어, 뻔뻔한 죄인 주제에!"
이런 소리가 들리고 끌려나가서 맞을 수도 있지요.
또한, 모두가 아는 죄인이 큰 거리에서 기도를 시작한다?
이건 돌팔매질을 당할 일입니다.
회당과 큰 거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를 하려면 자격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정받을 내용으로 해야만 하지요.
혹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사회적인 리더 계층으로 올라가고자 도전하는 사람들이지요.
예를 들면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입니다.
또, 미래의 산헤드린 공회원을 꿈꾸는 이들이지요.
그래서, 이 큰 소리 기도를 잘 하려면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외식과 위선이 필수가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신경쓰는 티를 내서는 안되지요.
목소리 톤부터, 표정, 감정, 또 손짓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완벽하게 연습을 해야 당일에 실수가 없지요.
이 큰 소리 기도 중에 실수를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습니다.
계속 말하지만 이 기도문을 만들기도 힘듭니다.
그리고 외우고 동작을 만드는 일은 더 힘들지요.
시선 처리도 연습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막상 기도하는 날에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지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 뿐입니다.
특별히 얼굴이 알려진 높으신 분들을 보면 더 하지요.
얼른, 순발력을 발휘해서 그분들이 자주 하는 말을 인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저 친구 누구야? 아주 잘하는데? 열심도 있고 실력도 있구만!'
이라고 말하면서 입소문이 돌면 앞길이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실패하는 날에는 인생 내리막이지요.
그러니 초보들은 기도하는 날을 몇 달전에 미리 정합니다.
그리고, 아주 철저하고 또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저도, 이 하나의 기도문을 완성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습니다.
구약성경을 구석구석 다 읽었지요.
바리새인 선배님들과 랍비님들의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까지도 들여다 봤지요.
그들의 말도 몰래 인용하고 유명 연극배우에게 몰래 과외도 받았지요.
물론 저와 같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하다보면 요령이 생깁니다.
연기 과외 선생님이 말했지요.
"자네는 연극배우를 해도 성공하겠어. 우리 극단에 들어오게나.
업계 최고 대우를 해줌세."라고 제안할 정도였으니까요.
한 가지 꿀팁은, 한 회당, 한 길목에서만 하면 안됩니다.
베스트 기도문을 몇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국의 큰 회당을 중심으로 돌아야지요.
또 여러 대도시의 길목을 다녀야 합니다.
높으신 분들이 인사를 하러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해야 하구요.
이런 식으로 하면 사람들의 인정을 빨리 받지요.
출세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저도 이제 서야 고백합니다.
사실, 제가 한창 잘 나갈 때에는, 남들에게 몰래 기도문을 써준 적이 꽤 있습니다.
제 도움으로 벼랑끝에서 회생한 사람들도 꽤 있지요.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상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에 쏙 드는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법에 맞는 방식으로 해주어야만 하지요."
너도할례가 말을 마쳤습니다.
그러자 살몬이 말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들에도 예배 때나 모임 중에 나타나지요.
우리도 우리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전통을 따른 기도문을 경계 하십니다.
그런데 이방인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지금 전통적인 긴 기도문을 이방인의 기도라고 말하십니다.
사실 유대교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이런 기도를 배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사람의 마음의 법에서 나온 기도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의 기도와 동급으로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이 긴 기도가 통하고
하나님의 응답과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사람의 마음의 법 그 자체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의 기도를 가르쳐주신 적이 없지요.
또 이렇게 요구하지도 않으셨지요.
그래서 이어지는 말을 보십시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신다.]
라고 하셨지요.
그러니 그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반대로, 이방인을 본받은 기도는 자기 마음의 법을 따른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린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은 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고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세요."
그 법을 믿는 믿음을 마음을 채워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살몬이 말하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너도할례가 말합니다.
"음,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문을 주셨습니까?
우선은 다음 글도 들어봅시다. 계속, 읽어보게나."
너도할례가 이미할례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
10 아버지의 나라가 속히 오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 주소서.
13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 6장 9절-13절]"
"잠깐만 멈추게나."
너도할례가 말합니다.
"역시 제 말대로군요.
이건 지금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른 기도문인가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기도가 그렇습니다.
먼 미래에 동방의 한 나라에서는 주기도문이라고 부를 것이지요.
교회 모임마다 안 하면 섭섭하고 뭔가 찜찜한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하나님과 같은 자비의 법에서 나온 기도지요.
그 법을 내 마음에서부터 채워달라는 기도입니다.
내 마음의 법을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문 이지요.
안 그러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리암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아! 그러면 이 기도의 내용이 말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말은 하나님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내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여기서도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법만 적용되는 나라니까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자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내가 가졌다고 믿는 사람은 가질 수 없는 마음이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내 마음의 법을 바꾸어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또 이런 변화를 막으려는 박해와 공격에서 구해달라는 간청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모든 변화를 원하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입니다.
아이구, 숨차다."
미리암이 말하자 살몬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아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기도문은 이것입니다.
내 마음의 법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변화되도록 도와달라는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변화되어야 생명과 복이 넘치고 이것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이어지는 말씀도 이 내용과 연결이 될 것입니다. 읽어주시지요."
이미할례가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14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16 너희는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슬픈 표정을 짓지 말아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짓는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17 그러나 너는 금식할 때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18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보이지 않는데 계시는 너의 아버지에게만 보여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19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고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기도 한다.
20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그 곳은 좀먹거나 녹스는 일이 없으며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며
23 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만일 네 안에 있는 빛이 아주 사라져 버린다면 네 마음이 얼마나 어둡겠느냐?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장 14절-24절]
"역시 그렇군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문을 얼마나 자주 외웠는냐가 아니지요.
이 기도문을 통해서 가지게 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실행 유무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적용받은 사람이라면, 그 법을 행해라는 말이지요.
그렇게 남을 용서해야 같은 법이 나에게도 적용된다고 하셨습니다.
금식에 대한 말씀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의 법을 따른 금식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자비를 구하는 금식을 하라는 말씀이지요.
율법의 완성을 위한 금식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지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 위한 금식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법이 바뀌어야 하지요."
살몬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물 이야기를 하시지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보물은 기준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쌓는 곳으로 내 마음의 법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땅에 보물을 쌓아두려면 땅의 생각을 따라야 합니다.
땅의 법으로 보물이라고 믿는 것들을 쌓아두어야 합니다.
땅의 생각을 따라서 땅에 쌓아둘 수 있는 보물은 돈이지요.
돈이 있으면 땅의 생각을 따라서 그 모든 보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살몬이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려면 하늘의 생각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하늘의 보물이지요.
하나님 그 자체가 내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 하시면 하늘의 생각을 따라서 모든 보물을 가진 것이 되지요.
그러니 예수님이 묻고 계십니다.
"자네가 보물이라고 믿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어떤 법을 따른 보물인가?
그 최종 모습은 돈인가 하나님인가?
솔직히 잘 생각해보시게나."
라고 묻고 계십니다."
사람들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살몬이 계속 말했습니다.
"이어지는 글을 보십시오.
내 진짜 보물에 나의 마음이 쏠릴 수 밖에 없습니다.
땅의 생각을 다른 보물에 집중하면 눈이 땅으로 가지요.
하늘의 생각을 따른 보물에 집중하면 눈이 하늘로 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내 마음의 법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예수님은 내 눈이 내가 집중해서 보는 것을 따라서 변한다고 설명해주셨지요.
이어지는 말씀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생각을 따른 보물, 즉 돈에 마음이 쏠리면 눈은 이것만 봅니다.
이것이 돈이 되는가 안되는가?
이 돈으로 무엇을(사람의 관심, 인정, 칭찬, 사랑) 살 수 있나?
이것이 마음의 법이 되는 것이지요.
지금 눈이 땅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두움만 보는 것입니다.
방에 불이 꺼지면 눈이 깜깜해집니다.
그러면 온 몸이 눈의 어두움을 따라서 반응하고 움직이지요.
그러니 온 몸이 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눈이 하늘을 향하면 빛을 보게 되지요.
방에 불이 켜지면 눈이 빛을 보니 몸은 그저 따라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내 마음의 법이 나의 주인을 결정합니다.
땅의 생각을 따른 마음의 법의 주인은 돈이지요.
하늘의 생각을 따는 마음의 법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내 마음의 법이 가는 쪽에 나의 사랑이 가고 반대편은 미움이 가지요.
내 마음의 법이 가는 쪽을 소중하게 여기고 반대편은 멸시합니다.
돈이 주인이 되면서도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반항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돈도 주인이 되고 하나님도 주인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생명은 어제는 하나님에게 달렸다가
오늘은 돈에 달렸다가 오락가락 하는 것이 됩니다.
자, 이미할례군, 계속 읽어볼까요?"
이미할례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생명이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몸이 옷보다 더 중요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새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새를 기르신다. 너희는 새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어째서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아라. 그것은 수고도 하지 않고 옷감을 짜지도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솔로몬이 온갖 영광을 누렸으나 이 꽃만큼 아름다운 옷을 입어 보지 못하였다.
30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하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도 이렇게 입혀 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혀 주시지 않겠느냐?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의 것으로 충분하다.'
[마태복음 6장 25절-34절]
이미할례가 읽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살몬님 말씀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돈으로 향하지요.
그러다보면 돈이 목숨보다 소중해집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강도와 맞서 싸우다가 돈과 목숨도 바꾸지요."
살몬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땅의 생각이 내 마음의 법이 되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생깁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영원히 남지 않지요.
썩어서 없어지지만 그래도 쌓두려고 합니다.
이것들을 생명처럼 의지하게 되지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보다는 돈에 더 마음이 가지요.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법이 바꾸지 않으면 마음이 가지가 않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보물이 보물로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염려가 안될 수가 없지요.
이 생각이, 즉 마음의 법이 바뀌지 않으면 이 말씀이 무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라는 이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 되지요.
마음의 법이 바뀐 사람만 쌓을 수 있는 보물같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미리암 자매가 해석한 그 기도문이 필요합니다.
그 먼 미래에 동방의 한 나라에서 주기도문이라고 부를 기도문인가요?
그 기도를 구하고 행하는 것이 바로 아래 말씀의 실천이 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운영되는 나라를 구합니다.
그 법이 인정하는 의를 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삶에 실행되지요.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대로입니다."
"그렇다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의 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말씀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요한이 물었습니다.
"돈을 땅에 쌓아두려면 자신감보다 불안감이 큽니다.
어제와 오늘은 아무리 자신이 넘칠수는 있지요.
하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는 것이 아니지요.
오늘 아침, 어제 밤, 혹은 10년전부터 염려하고 대비해 두어도 안심이 안됩니다.
내일 일은 내가 미리미리 염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 날의 괴로움이 그날 끝날 수가 없지요.
이 괴로움이 다시 돌아올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비하는 일에 내 남은 인생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살몬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채운 사람은 다르지요.
내일의 염려보다 지금 나를 잡아주는 그 법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내일 문제가 와도 하나님의 자비는 나를 구해주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늘 나를 다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의 괴로움도 곧 지나갈 일들이지요.
그리고 다시는 기억나지 않을 일이 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은 끝이 없지요.
그분의 긍휼하심은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따라서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지요."
"맞습니다.
지금 이미할례가 읽어주신 부분은 상당히 길군요.
아직도 읽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잠시 쉬었다가 갑시다."
살몬의 말에 다들 동의하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밖에 바람을 쐬러 나가고,
어떤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나누고,
어떤 이들은 먹을 것을 나누면서,
어떤 이들은 기도를 하면서 각자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6장 끝-
여섯 번째 계단을 올라가, 일곱 번째 계단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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