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소설은 성경 강해를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보는 이야기식 강해입니다.
편안한 소설의 형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성경의 구성형식인 장과 절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원본은 하나의 통으로 된 서신이었음을 생각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성경을 옆에 두고 참고하시면서 보셔도 좋습니다.
강해 소설에서 인용하는 한글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영어 성경은 ESV (English Standard Version)입니다.
마태복음 3장 세 번째 계단에 올라갑니다.
요한이 말했다. "자 이제 읽도록 하겠습니다.
1 그 무렵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2 '하늘 나라가 가까왔다! 회개하라!' 하고 외쳤다.
3 예언자 이사야는 일찌기 이 요한을 가리켜 이렇게 예언하였다. '광야에서 어떤 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를 위해 길을 준비하라. 그의 길을 곧게 하라.'
4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산꿀을 먹고 살았다.
5 그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부근 모든 마을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와
6 죄를 고백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세례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꾸짖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앞으로 내릴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피하라고 했느냐?
8 너희는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것을 보여줄만한 바른 행동을 하라.
9 그리고 속으로나마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고 말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은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도 없다.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
12 자기 타작 마당에서 모든 곡식을 키질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이 때에.." 요한이 계속 이어가는데 너도할례가 말합니다.
"잠깐 멈추게나. 너무 빨리 나가는구만.
내가 자네처럼 우리 유대인들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르쳐주고 설명해 줄 시간을 줘야지."
"네?" 요한이 얼결에 대답을 하는데, 미리암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던 예수님의 어린시절이 없네요?
마태사도님은 왜 갑자기 요한 선지자님으로 넘어가셨을까요?
원래 자세하고 꼼꼼하게 말씀 해주시는 것을 좋아하셨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모두들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성도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일어나면서 말을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였습니다.
"오, 일리마님이 말씀하신다."
"저 분이면 거의 사도급 원조 성도시면서 산 증인이야.
사도들과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분들 중에 한 분이시잖아?"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기대하는 눈빛으로 일리마를 바라봤습니다.
이제 일리마라는 사람이 말하고자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겉모습은 정말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차게 일어나는 모습에서 기력이 넘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사람들을 두루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방금 기도하기 전에 살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 마태님는 역사 서신을 보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법으로 해석할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해석할 것인가요?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보내주신 것이지요.
요한 선지자님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택한 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오시는 길을 준비하신 분이 아닌가요?
그러면 이야기가 아주 일관성있게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아닌가요?"
이 말을 하자 요한이 뭔가를 깨달은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일리마님!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가 나오는 것이군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지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하실 분으로 보여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죄의 용서가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이지요."
살몬이 이어서 말합니다.
"요한이 잘 이해하고 있군요.
선지자 요한님이 준비한 주님의 길이 바로 그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경험하는 시작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를 따라서 오는 죄의 용서지요."
그 말을 듣고 일리마가 말했습니다.
"사실, 살몬 선생님 말을 들으니, 옛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선지자 요한님에게 침례를 받던 기억이지요.
물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의 용서와 다시 태어남을 확신했습니다.
그 감동과 은혜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는군요."
일리마가 잠시 눈을 감고 그 때를 회상하는데, 미리암이 말합니다.
"그런데 낙타털 옷은 뭐고 가죽 띠는 뭐지요?
그리고, 왜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랍니까?
선지자님들은 다 저런 식으로 입고 먹었나요?
저는 선지자가 되고 싶지만 메뚜기를 먹어야만 한다면 사절입니다."
미리암이 말하자,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일리마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그 내용을 넣도록 하신 이유가 있지요.
판단은 외모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십시오.
요한 선지자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옷이 명백하게 비교가 됩니다."
그러자 다들 매일 마주치면서 보는 그들의 옷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최신 유행을 따라서 옷을 맞추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 예루사체가 이탈리아 수입원단을 가져다가 만든 옷이 유행이었습니다.
예루사체가 기존의 바리새인들의 복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옷입니다.
그 바리새인 컬렉션은 오직 바리새인들만 구입해서 입을 수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도 역시 바리새인 뺨치는 고급스러운 옷이 옷장에 가득했습니다.
그래도 일부러 제사장 복장을 그대로 입고 나오고는 했습니다.
다들 자기들이 최근에 보았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옷을 상상하면서
그 화려함과 또 노골적으로 풍기는 위압감을 생각하고 있는데 일리마가 말합니다.
"자 이제 꿀이 덕지덕지 붙은 낙타털 옷을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왼손 손가락에 붙은 꿀을 입으로 빨고 있지요.
또, 오른손으로는 메뚜기를 들고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이상하게 보는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 남자가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 마음 가는대로 막말을 하는 깡마른 청년을 생각해보세요."
"뜨거운 사막의 남자로군요." 미리암이 다시 말하자 모두 웃었습니다.
"선지자 요한님에게 다가가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보았지요.
그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들과 비교해서 요한님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지요.
모두들 잘 알지만, 원래 태생대로라면 이 요한님도 레위인이시고 제사장이 아닙니까?
사실, 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무리에 함께 있어야 할 분이지요.
하지만 자기 모습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지요."
일리마가 다시 말을 시작하자 다들 잠잠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도 겉모습을 보고 그분에게 간 것이 아닙니다.
제가 침례를 받으려고 친구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지요.
먼저 침례를 받고 오는 사람들에게 물었지요.
"요한 선지자님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제일 거지같이 입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남자에게 가시면 됩니다.
많이 놀래실꺼에요."
그래서 저희끼리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겉모습을 보고 실망하지는 말자.
하나님은 편견이 없으신 분이잖아?"라고 서로에게 당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지요.
하지만 그분의 모습은 솔직히 충격이었고, '속은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눈빛에서 나오는 열정이 보았지요.
그리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습니다.
그 선포가 우리가 왜 그곳으로 갔는지를 확인해주었지요.
우리가 그곳으로 간 이유는 갈급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갈급함이었지요.
유대교인으로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대로 살 수 없다는 죄책감이 너무 컸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기대하면서 저도 줄을 섰습니다.
마침내, 내가 세례를 받을 때, 요한님이 말했지요.
"젊은이, 다시 태어났으니 새 마음으로 살아야해."
제가 말했습니다.
"선지자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한 기쁨과 감동 속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듣느라고 잠잠했습니다.
일리마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제 삶의 모습은 이전과 같아졌지요.
변화 없는 저 자신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효과가 사라진 것인가?
혹시 한 번 더 받으면 어떨까?
그 날 머리를 물에 더 깊이 넣어야 했는가?
조금 더 오래 담갔어야 했나?
내가 물속에서 숨이 차서 너무 짧게 담갔나?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내면의 갈등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름을 적어놓고 받은 침례도 아니니까 다시 가자.
그동안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었으니 아무도 모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지금 서신에 기록된 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본 것입니다.
멀리서 그들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뭔가 불안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가까이 다가오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듯이 바라봤습니다.
호위하는 사람들은 길을 열고자 몽둥이를 들었지요.
그리고 길을 열라고 소리를 치면서 사람들을 위협했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권위에 눌려서 위축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유대인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감정이지요.
어쨌거나 다들 주눅이 들어서 조용히 길을 열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강물 흐르는 소리와 요한 선지자님이 메뚜기를 씹는 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안들리는 정말 폭풍 전의 고요와 같은 상황이 되었지요.
자기 동료들이 침례를 마칠 때마다 큰 소리로 기뻐하고 축하하고 노래하면서 떠들던 세리들과 유대인 출신 군인들은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기려고 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일리마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메뚜기를 씹던 요한님은 전혀 위축이 되지 않았지요.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거리로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남은 메뚜기를 다 먹고는 갑자기 모두가 들으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외침은 마태사도님이 기록한 말씀대로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불에 던지리라!'
저를 비롯해서 모두들 그 큰 소리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 음성이 천둥 같이 온 요단 광야에 울려퍼졌지요.
가장 앞에서 말을 타고 오던 바리새인 한 명은 놀라서 말에서 떨어질 뻔 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예언은 정말 말 그대로였습니다.
그 우렁찬 외침을 들으니 눌려있던 마음과 정신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지요.
'아니 그 말씀은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왜 평범한 우리가 아니라 의로운 이들에게 호통을 치시는 것일까?'
그러면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처음에는 놀라 당황했지요.
하지만 곧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눈치빠른 그들의 부하들은 주인들의 당황과 분노를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면서 몽둥이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겁을 먹었습니다.
오늘 요한님은 장렬하게 순교하시겠다라는 걱정에 간담이 녹았지요.
그래서 할 수 있다면 내가 용서를 빌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위압하는 공기를 뚫고 또 외치셨지요.
제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은 당당하게 고개를 드십시오.
그리고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나는 지금 당신들의 회개를 위해서 물로 침례를 줍니다.
하지만 나의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당신들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라는 말씀이었지요.
"그 음성이 저의 마음에 너무나도 크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지요.
'그렇다면, 요한 선지자님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신 분이 있다는 말인가?
그분에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으면 내 삶의 변화가 가능할까?
이 대단하신 요한 선지자님이 말하신 그분은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일까?
그분은 누굴까?
그분이 내 삶을 변화시켜주실 수 있을까?
물로 침례를 받은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으면 생길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
그러자 저에게는 그 말씀이 기대가 되면서 큰 위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제 머리를 다시 당당하게 들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그리했지요.
심지어, 세리들과 유대인 출신 군인들까지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모두 하나 같이 죄책감과 정죄의 눌림에서 벗어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모여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씩 물가에 서있던 선지자 요한의 옆에 가서 서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그들을 호위하고 온 사람들도 이것을 보고는 놀랐지요.
이 무리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서는 당황하면서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거리를 두고 물러서더니 한참을 서로 말싸움을 벌이더군요.
저는 거기까지 보았지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도 선지자 요한 님의 뒤에 오실 그분의 타작마당에서 알곡이 될 수 있을까?
나에게도 과연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이런 기대와 의문을 품으면서 말입니다."
일리마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살몬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지자 요한님을 통해서 일리마님과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들어왔지요.
그중에 많은 분들이 이미 돌아가셔서 아쉬웠는데, 아직 일리마님이 계셔서 다시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요한 선지자님이 주님의 길을 예비한 것이 이런 방법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 사건을 듣게 되었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갈급함을 더 가지게 되었지요.
이제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오실 분을 기대합니다.
그렇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예수님을 기대하게 해주셨습니다.
자 다음 부분이 궁금합니다. 읽어주시지요."
요한이 글을 이어 읽었습니다.
13 그때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께 '주님, 제가 도리어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주님께서 제게 오시다니요!'하며 사양하였다.
15 예수님이 요한에게 '지금은 내 말대로 하자.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다.
16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이제 예수님이 짜잔! 등장하시는 군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요한님은 침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님을 말렸을까요?
그리고 왜 예수님은 이렇게 해서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셨구요?"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하자면,"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선지자 요한님의 말을 먼저 살펴 봐야지요.
그분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선지자 요한 자신도 불과 성령의 세례에 목말라 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선지자 요한에게
자네가 주님의 길을 곧게 만들고 있네.
내가 걸어가야 할 그 길이야.
그러니 내가 침례를 받아야 모든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예루살렘 성전으로 걸어서 들어가려면 반드시 먼저 성문(물침례)을 통과해야지."
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이지요.
"요한 선지자님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의의 길은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고 걷는 길이지요.
그리고 그 법의 적용을 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침례요한이 곧게 만든 길 즉 회개의 물침례의 길이지요.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님이 지나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있지요.
내 뒤를 따라서 그 길로 걸어와야 하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분들도 믿는 성도들에게 물침례를 해주셨고,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지요.
물침례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을 믿고, 내 마음의 법을 버리겠다는 결단입니다. 안그렇습니까?"
그 말에 모두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떡이는데 미리암이 말합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이 열리는 않았지요.
또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지는 않았구요,
오직 예수님에게만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일리마님?"
미리암이 일리마에게 묻자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이 맞네 미리암 자매.
예수님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지."
일리마가 말을 마치자 다시 미리암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는
이 확실한 증거를 왜 예수님만 보신 것인가요?
"아, 사도 요한님의 말씀으로는 선지자 요한님도 보았다고 했지요.
그런데, 왜 마태 사도님은 여기서 예수님만 본 것 처럼 쓰셨을까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 비둘기 같은 성령을 보아야지요.
그러면 정말 더 큰 권능을 가진이가 오신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하늘의 소리가 모두에게 들렸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을 알 수 있지 않나요?
아, 하나님은 이 좋은 기회를, 이렇게 쉬운 길을 참 어렵게 가게 만드셨습니다."
미리암이 탄식을 하는데 요한이 말합니다.
"만약에, 미리암 자매님이 하나님이면 다들 예수님을 쉽게 믿겠습니다."
살몬이 말합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아쉽게도 그런 방법은 주님의 길과는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침례요한 앞에서 강매가 아닌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물침례로 하나님의 자비를 얻고 그 법을 따른 회개의 삶을 결단할 것인가?
아니면 앞에 나온 대로 그냥 왔다가 돌아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돌아갈 것인가?
그들처럼 내 마음의 법을 고수하면서 살 것인지를 택해야 했지요.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으려면 선택을 해야합니다.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에 강제로 선택해야 하는 방식이 아니지요.
어떠한 기적을 보았어도 하나님의 자비의 법안에서 살겠다는 결단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길을 따라서 걸을 수 있지요.
"우리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선택한 것과 같습니다. 잠시만요, 목이 마르군요."
물을 한 입 마시고 나서 살몬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길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따라 걸으시고자 첫 걸음을 걸으셨지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쁜일입니까?
그러니 직접 내 사랑하는 아들로 인해서 너무나도 기쁘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서 격려해주십니다.
"너는 나의 길을 따라서 계속 끝까지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걸어가야 한다.
반드시, 성령이 함께 가야 하기에 성령을 보내주마!"
라는 말씀이 됩니다.
주님의 길은 이런 길입니다.
사람의 허락을 받고 인증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지와 격려와 응원을 받으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증이 필요한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지와 격려와 응원을 받아서 받아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하나 되어 걷는 이들이 제자들이고 교회인 것이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기적을 통해 강요하는 강매가 아니고 선택이군요.
하나님도 사업을 참 어렵게 하십니다."
다들 웃는데 살몬이 말합니다.
"자기 백성의 죄를 그들로부터 옮기시는 일이 주님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 행위는 하나님이 검증해 주십니다.
즉 사람들의 인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증이 필요하지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을 들을 분은 예수님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의 법을 선택하라고 하시지요.
하지만, 이 진리를 강요하시거나 세뇌시키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자 이제 다음 부분은 미리암 자매님이 읽어주시지요."
살몬이 말을 마쳤습니다.
- 3장 끝.
세 번째 계단에 올라, 네 번째 계단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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