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소설은 성경 강해를 소설의 형식으로 만든 강해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성경의 구성형식으로 장과 절을 구분하였지만,
원본은 하나의 통으로 된 서신이었음을 생각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성경을 옆에 두고 참고하시면서 보셔도 좋습니다.
강해 소설에서 인용하는 한글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영어 성경은 ESV (English Standard Version)입니다.
마태복음 4장, 네 번째 계단에 올라갑니다.
미리암이 앞으로 나와서 서신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 시작합니다.
1 그리고서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가셨다.
2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여 몹시 시장하셨다.
3 이때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
4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라고 쓰여 있다.'
5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6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는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손으로 너를 붙들어서 네 발이 돌이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7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에게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는 말씀도 기록되어 있다.' 라고 대답하셨다.
8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9 예수님께 '네가 만일 엎드려 나에게 절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라고 하였다.
10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탄아, 썩 물러가거라.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쓰여 있다.'
11 그러자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께 시중들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 대한 말씀이군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따르면 이것도 같은 흐름일까요?"
미리암이 질문하자 살몬이 이어서 말합니다.
"맞습니다. 마태사도님은 지금 성령님이 이끌어가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한 곳에서 예수님의 마음의 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곳에 사람의 마음의 드러나는 것과 같지요.
모든 사람은 시험, 즉 유혹을 당하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선택의 최종 모습은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그 전에 상황을 받아들이고
머리로 해석하고 생각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법을 따라서 어떻게 할 지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말과 행동으로 실행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요.
그리고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마귀가 시험의 말을 던진다고 통하겠습니까?"
성도들 중에 누군가가 질문하였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답해보겠습니다."
요한이 말하자, 살몬이 허락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뎍였습니다.
요한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시지요.
지금 하나님의 성령도 함께 하십니다.
마귀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 예수님이 하지 않을 것도 알았겠지요.
하지만 마귀의 시험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말을 가지고 예수님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와 재판을 하고 다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예수님은 주님의 길을 살필 시간이 없습니다.
마귀와 다투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게 계속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도 어느새 방향을 잃고 다른 길로 가게됩니다.
이것이 마귀가 주는 모든 시험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 걷는 것보다 마귀를 처단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지요. "
"맞소이다. 이 구약성경 전문가인 너도할례가 부연설명을 해보자면요,"
너도할례가 주섬주섬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태초의 인간이 아담이 여기에 걸려들었지요.
아담이 걸을 길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서 나온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뱀과 밤낮으로 선악과 토론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다른 길을 택한 것이지요."
"마귀의 모든 시험의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군요.
결국은 예수님의 관심을 주님의 길에서 돌리는 것이지요.
다른 일들로 산만하게 만드는 것인가요?"
미리암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먼저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하지요.
지금 시험하는 자는 예수님에게 자기 말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만일에 성경의 말씀으로 끊어버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말이 머리 속을 계속 맴돌고 대화하고 따지면서 시간을 보내셨겠지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성령의 음성에 주목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도 함께 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마귀의 말과 생각을 끊어버리시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니다."
"그러면 성전에서 뛰라는 말도 그런 맥락인가요?" 미리암이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이제 성경말씀을 끌어다가 예수님께 던집니다.
자기의 말을 생각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예수님이 "야, 마귀야 니가 성경을 아냐? 한번 붙어불까?"
라는 식으로 대응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대화와 토론이 시작되면 점점 산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로 끊으셨지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의 말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에게 도발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아까부터 건방지게..."
라고 반응하게 만들어서 대화를 시작하려는 의도입니다."
요한이 말을 마치자 미리암이 다시 말합니다.
"그러면 세 번째 마귀가 나에게 경배하라는 말도 그렇게 되는 군요.
예수님을 완전히 발끈하게 하는 의도네요.
이제, 말싸움, 몸싸움을 해보자는 도발이군요.
이미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받으시고 다스리실 분입니다.
그런데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이거 받을려면 나에게 절해. 그러면 줄께."라는 말의 의도는 하나지요.
어떻게 해서던지 예수님의 분노 게이지를 채우려는 의도네요.
정말, 마귀의 짜증나는 도발이 되는군요."
미리암이 말하자 살몬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이 자식아! 라고도 안하시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하셨지요.
그리고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끊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당할 때에 이렇게 대응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따라서 마귀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으셨지요.
"나는 너의 말을 듣지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 집중하겠다.
이 마음에 뭘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걸어갈 것이다"
는 결단을 선포하시고 행하신 것이지요.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를 떠나갑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님을 수종들었지요.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전쟁입니다.
예수님이 "미카엘 이리와서 이 놈을 손봐라!"라고 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마귀와 천사들의 세계 대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선택하시니,
천사들도 주님의 길을 걷도록 돕게 되었습니다."
"에헴, 또 하나님이 이 시험을 허락하신 시기를 보면,"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사십 일을 금식하시고 나서 배고프실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마음에 들어있는 가장 깊은 마음의 법이 드러나는 법이지요.
이건 예수님의 가징 깊은 곳에서까지 말씀으로 가득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물러난 것이지요.
가장 깊은 곳까지 하나님의 법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복종하고 떠나가게 만드는 권세지요."
"자 그러면, 계속 읽겠습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12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13 그러나 그분은 나사렛에 계시지 않고 스불론과 납달리 지방의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아, 지중해 동쪽 요단강 서편의 이방 사람들이 사는 갈릴리야,
16 흑암 가운데 사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이때부터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왔다!' 하고 전도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를 보셨다. 그들은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였다.
19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예수님은 거기서 좀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이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도 부르셨다.
22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를 배에 남겨 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
23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그리고 병든 사람들과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예수님의 소문이 시리아까지 퍼지자 사람들은 온갖 질병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간질병 환자, 중풍병자들을 수없이 데리고 왔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셨군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님들의 예언도 본격적으로 들어맞는 것입니다."
너도할례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사람들을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하였지요
그 땅을 사망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늘에 앉은 자들이라고 하였지요.
우리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문가인 제가 쓴 책대로입니다.
제 심혈을 기울인 역작,
[너도할례가 말해주는 선지자의 예언에 비친 현대 이스라엘의 지리와 그 비밀]
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허허허! 자 어디보자,
음, 이 스불론, 납달리 땅과 갈릴리 바다를 둘러싼 지역을 봐야지요.
이거 지도라도 꺼내서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데,
음, 이보게, 이미할례군! 지금 이스라엘 지도 가진 것 있나?
되도록이면 저작권 상관없는 지도로 부탁하네."
너도할례가 자기 비서인 이미할례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한 젊은이가 헐레벌떡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파피루스 뭉치를 한 무더기 들고 돌아왔습니다.
"여기 지도들이 있습니다만, 이 지도를 쓰실까요?"
"아닐세, 아니야,
저작권이 문제되지 않는 지도로 가져와야지,
이건 지난번에 걸린 것 아닌가? 다른 걸로 써보세."
너도할례가 지적하자 이미할례가 당황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이것저것 살펴보고 또 하나를 꺼냈습니다.
"이건 어떨지요?"
"음, 어디서 구한 건가? 뭔가 찜찜하네."
너도할례가 묻자 이미할례가 대답했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에서 가져왔는데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허허, 지도의 내용이 내가 설명할 내용 그대로일세.
잘 만들어져 있으니 그냥 한 번 써보세.
문제 생기면 자네 월급에서 깔 것이야."
너도할례가 으름장을 두고서는 지도를 펼쳤습니다.
잘 보시지요.
이스라엘의 중심지는 언제나 여기 예루살렘입니다.
갈릴리에서 멀리 남쪽에 위치하고 있지요.
여기는 말씀의 빛이 있는 곳입니다.
이쪽 예루살렘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봅시다.
바로 위에 지역이 사마리아 땅입니다.
여기는 혼열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이지요.
정통 유대인들은 버린 타락한 땅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위로 가봅시다.
이제 갈릴리 나사렛, 스불론 납달리의 지역이 나오지요.
여기는 또 정통 유대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가나안 사람, 시리아 사람이 삽니다.
페니키아(지도에는 베니게)인들, 두로 사람, 시돈 사람들도 있지요.
그리스 식민지 이주자들이 정착한 데가볼리도 있습니다.
사마라아의 혼혈인들도 빼면 섭섭하지요.
유대문화, 소아시아 문화, 페니키아 문화,
로마 문화, 그리스 문화, 페르시아 문화가 다 있습니다.
우리 세계의 모든 종교와 문화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들이지요.
그러니 이곳이야 말로 사망의 땅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늘에 앉은 자들인 것이지요.
그러니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이 누구를 의미하는가?
이런 외국 종교와 문화에 눌려서 기를 못피는 정통 유대인들인가?
아니면 이 종교와 문화 자체에 눌린 모든 사람들인가?
이것이 문제이지요.
더 자세한 내용은
[너도할례가 말해주는 선지자의 예언에 비친 현대 이스라엘의 지리와 그 비밀]
을 사서 보도록 합시다."
너도할례가 긴 설명을 끝내고 이미할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대기하던 이미할례가 물 잔을 건냈습니다.
너도할례가 물을 마시는 동안에 요한이 말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님의 예언은 큰 빛이 비추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빛은 자리와 사람을 가려서 비추어주지 않지요.
이 빛은 너도할례님이 말씀하신 그 곳을 비추었지요.
작지만 온 세상이 들어 있는 지역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친 모든 사람에게 비추어진 빛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한 빛이 되지요.
그러면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선포하신 대상은 온 세상이 됩니다."
물을 마신 너도 할례가 살짝 민망해 하면서 말했습니다.
"허허, 내가 그걸 몰랐겠는가?
다만 율법과 할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야."
"요한의 말이 맞습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 길을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우리 사도님들이지요.
예수님은 베드로님, 안드레님, 야고보님, 요한님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강매가 아니라 선택을 할 기회를 주셨지요.
사도님들도 자기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다들 스스로 선택해서 따라갔다고 증언하셨었지요."
미리암이 말합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오는 내용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나를 믿으라는 강매가 아닌가요?
그렇게 수많은 무리들이 모이게 했구요."
"허허, 내가 또 말을 해야 할 차례로군요.
좀 앉아서 쉬고 싶지만,
이 시대가 나를 원하니 제가 달려가야지요."
너도 할례가 거드름을 피면서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에 왔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가 일어나려면 그 징조가 보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에 맞는 하나님의 나라의 징조는 이것입니다.
바로 다윗의 후손이 새로운 제국을 세우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왕의 뿜뿜이가 넘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 밑에 용사들이 붙어야 하지요.
뛰어난 전술가, 전략가가 빠지면 섭섭합니다.
그리고 마치 다윗 왕 때처럼 이리저리 나라가 만들어져가는 모습이 보여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천국의 징조는 이런 기대와는 다르지요.
용사와 전술가 전략가가 없습니다.
이름 없는 갈릴리 어부들이 붙었습니다.
사울 왕이나 다윗 왕 같지 않지요.
외국의 지배를 물리치고 정복하지 않습니다.
모든 약한 것과 모든 질병의 지배를 정복하는 모습이 나타났지요.
예수님의 권세는 하늘의 차원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건 강매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집행되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니 천국이 온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함께 참여하고 따르면 그 백성이 됩니다.
이 법을 거부하고 싸우면 적, 또는 반란군이 됩니다.
그러니 또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집행을 보고 있습니다.
그 법을 받아들이고 왕이신 예수님의 백성이 되어서 그 뒤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거부하고 저항할 것인가?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이건 좋은 예는 아니지만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로마제국의 힘을 거부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마음 속에서부터 로마의 속주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마음 속에서부터 끝까지 로마에 반항하면서 저항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선택인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이어지는 글에서 이 흐름이 나오겠지요.
미리암 자매 계속 읽어주세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저도 계속 읽고 싶은데 화장실이 급해서 누구 다른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웃는데 누가 손을 들고 우렁차게 말했습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한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오! 보아스군이군. 자네가 읽어주게나."
살몬이 웃으면서 말하자 보아스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 4장 끝
네 번째 계단을 지나 다섯 번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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