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일곱 번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자, 이제 다들 자리에 앉으시지요."
요한이 말하자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제 이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보도록 하지요."
살몬이 말을 하고는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1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2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 당할 것이다.
3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내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도 빼낼 수 있을 것이다.
6 너희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것들이 발로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7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은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중에 자기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선물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이다.' [마태복음 7장 1절-12절]"
"여기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살몬이 말을 마쳤습니다.
"먼저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러자 너도할례가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음, 지금 말씀은 마음의 재판을 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판결까지 내리는 사람의 마음을 말씀하시고 있군요.
지금까지 우리가 말했던 마음의 법을 따른 판결이지요.
이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판단합니다.
내가 판사가 되어서 죄의 유무를 따지고 마음으로 판결을 내리지요.
물론 저처럼 율법을 잘 아는 율법 전문가들은 다릅니다.
다 율법을 따라서 정의를 선포할 뿐이지요.
그런데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는다는 말씀이 솔직히 좀 마음에 걸립니다.
이러면 찝찝해서 누가 율법을 따라서 정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살몬이 말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건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말씀대로 우리의 마음에는 법정이 있습니다.
이 법정의 판사는 우리 자신이지요.
그리고 이 법정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재판을 엽니다.
그리고 여기에 끌려오는 피고들은 그 제한이 없지요.
내 배우자,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들 입니다.
내 직장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지나가다가 본 사람들이지요.
내가 소문으로 들은 사람들, 내가 키우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식물들, 이미 죽은 사람들까지 소환하지요.
그리고 상상 속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피고입니다.
이제 이들을 하나씩 재판을 하지요.
그런데, 모든 재판은 법을 따라서 판결이 납니다.
우리 마음의 법정은 우리 마음의 법으로 판결합니다.
이 법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정의로울 수도 있지요.
아니면 말도 안되는 억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내 마음에 합당한 나만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 법을 따라서 재판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세상의 소송은 목적이 있지요.
법적 소송의 목적은 상대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열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죄가 나면 나의 비판을 받게 되지요.
우리는 이 판결문을 나 자신에게만 외치지 않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선포합니다.
“저 인간은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한 나쁜 놈이야.”
“저놈을 곱게 죽지 못할 놈이야.”
“하늘의 저주를 받아라!"
"내가 죽더라도 귀신이 되어서 그 인간을 괴롭히리라!"
이런 재판이 매일 24시간 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재판을 받았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지요.
내 마음의 법정은 큰 죄를 지은 죄인일 수록 자주 끌고 나와서 또 재판을 엽니다.
그렇게 매일 끌려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에 끌려오는 가장 흉악한 죄인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그 법정에 끌고 들어가서 심판하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마음껏 중죄를 선포하고 마음껏 때리지요.
욕을 하고 짖밟고 모욕하고 죽입니다.
다른 중죄인들보다 더 극한 기준을 가지고 판결을 내리지요.
이 말씀이,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 당할 것이다.]
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법정은 절대로 문을 닫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의 법만은 바꿀 수가 있지요.
예수님은 이것을 말하고 계십니다."
살몬이 잠시 물을 마시고 말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니 내 마음이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내 마음의 법이 개정이 되어야 하지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한 것과 같습니다.
나도 내 마음의 법정에 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할 법이 필요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내 마음의 법을 눈 속의 들보라고 말하십니다.
내 마음의 법으로 보는 형제의 죄는 티와 같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내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도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마음의 법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아닌 척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개정이 된 것처럼 연기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진짜로 내 마음의 법을 개정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눈 속의 티같은 형제의 잘못은, 쉽게 용서하겠지요."
"그러면 [너희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것들이 발로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라는 말씀은 갑자기 왜 나온 것입니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허허, 이 너도할례님이 나설 순간이 온 것 같군요."
너도할례가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쓴 책, [너도할례, 거룩을 묵상하다]을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이 세상의 개념으로는 생각할 수 없지요.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 세상의 누구도 할 수 없는 능력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그것을 집행하는 나를 위한 법입니다.
내가 그 법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법을 다 믿는다는 말이되지요.
예수님은 지금 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세상의 다른 생각이나 철학에 넘겨주면서 틈을 주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개와 돼지가 바로 거룩과는 관련이 없는,
즉 하나님이 없이 나온 생각과 사상과 철학이지요.
세상의 마음의 법이지요.
세상의 사상, 철학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대적합니다.
하늘이 아닌 땅에 보물을 쌓도록 만드는 생각이지요.
그것들의 주는 염려와 근심에 찢기고 상하는 것입니다.
개나 돼지가 나를 공격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냥 있겠습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치거나 맞서서 싸우겠지요.
개와 돼지를 맞서는 일에 나의 시간과 힘과 지혜가 다 사용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차라리 그 시간에 믿음으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찾으라고 하셨지요.
그 문을 두드리라고 말하시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너도할례님이 정말 잘 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필요를 정확하게 알고 요청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하는 것이지요.
이 법을 찾아내서 내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찾는 것이지요.
이 법이 들어가 있는 곳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 문은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에게 열리는 문입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소이다.
이어지는 구절을 그렇지요.
아버지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세상의 아버지의 자비입니다.
갓난아이가 부모에게 먼저 대가를 지불하지 않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자비를 베풀어주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고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실 불과 성령의 침례입니다.
내 마음의 법이 바뀌는 능력입니다."
요한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의 결론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이다.']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누군가가 말하자 요한이 다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나로부터 생명이 넘치고 복이 흘러가게 만들지요.
그러니 이 법으로 내 마음의 법을 바꾸고,
그 개정된 새 마음의 법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대하라는 말씀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이 되지요.
그리고 회개의 새 삶, 선지자의 선포가 되는 것이지요."
살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길도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14 생명에 이르는 문은 작고 길도 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떼와 같다.
16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을 보고 진짜 예언자인지 가짜 예언자인지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송이를 따거나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21 내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다.
22 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것이다.
23 그러나 그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악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거라.' 하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내려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치면 크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28 예수님이 이 말씀을 끝내시자 군중들은 그 가르치심에 몹시 놀랐다.
29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는 분답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장 13절-29절]
흠, 길지만 여기까지 읽어보았습니다.
이제 좁은 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군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다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좁은 문이라는 표현도 그렇구요.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그 구원의 문이 더 크고 그 길이 더 넓어야하는 것 아닌가요?
왜 일부러 어럽게 만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이 두 개의 길과 문은 가기가 쉽다 쉽지 않다로 생각해야지요.
큰 문과 그 길은 내가 내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아도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넓으니 수많은 마음의 법과 함께 걸어가면 되지요.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좁은 문과 그 길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만 들어갈 수 있는 문과 길이지요.
길이 좁고 굽으니 다른 법이 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문도 작아서 오직 그 법만 통과할 수 있지요.
그러니 마음의 법의 변화가 없는 구원과 축복을 말한다면
그 사람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는 선지자도 거짓 선지자가 되지요.
거짓 선지자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거짓 선지자라 함은, 거짓말을 하는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거짓이라고 하면, 남들에게 선지자인 척하는 하는 거짓이 있지요.
혹은 진짜가 무엇인지를 아는 선지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마음의 법은 바꾸지 않는 선지자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 선지자가 됩니다.
저같은 말씀 전문가라면 전자를 잡아내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방법은 쉽지 않지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열매인데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과열매는 사과나무가 스스로를 사과나무로 의식하고 사과를 맺으려고 집중해서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나무가 집중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리지요.
그러니, 열매라 함은 이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 되지요.
이 열매가 어떤 마음의 법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요한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하셨지요.
예수님과 똑같은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기 마음의 법이 이 자비의 법으로 개정되지 않으면,
자기 삶에서는 결국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어기는, 즉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 사람들의 선포와 권능과 기적이 불법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불법이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예수님이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음의 법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의 근본이 변화된 사람이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아! 그래서 반석 위에 집을 말하시는군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가진 사람은 듣고 행한 사람입니다.
반석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되고, 집은 내 믿음이 되겠습니다.
비와 홍수와 바람은 이 믿음을 흔들고 부수는 땅의 생각이 되겠군요.
아무리 믿음이 좋아보여도 이 집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
즉 내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에 이르지 못할 때에는
이 믿음을 흔들고 부수는 땅의 생각이 오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심한 것이군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가르침(마태복음 5장부터 7장)의 시작과 마무리가 같은 말이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자신의 마음의 법을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바꾸려는 사람이,
그 법을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의 뿌리까지 채우면,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되고,
천국은 이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 예수님이 이 말씀을 끝내시자 군중들은 그 가르치심에 몹시 놀랐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는 분답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는 말씀입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여기 율법학자, 즉, 서기관 같지 않다라는 표현이 있지요.
사실 이 사람들은 자기 권위를 엄청나게 표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과는 달랐다고 하십니다.
권위있는 자와 같다고 하셨지요.
이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마치 왕명을 선포하는 권위와 같음을 본 것입니다.
세상에서 왕이나 황제의 명령이 적힌 포고문을 선포하는 사람도 귄위가 넘치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이 적힌 포고문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예수님에게는
얼마나 큰 귄위가 느껴졌을지 상상도 안갑니다."
그러자 일리마가 말합니다.
"너도할례가 잘 말해 주셨소이다.
내가 그곳에 있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권위였소이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던 말던, 그 선포에서 느껴지는 권위는 진짜였지요.
왕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수준이 아니라 왕이 직접 선포하는 것과 같았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했지요.
'이분이 혹시 그리스도일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왕이신가?'
그리고 또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 이분은 하늘의 권위로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구나!'
그 권위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더 보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었지요.
그래서 계속 그분을 따라가게 되었지요."
"자 또, 계속해서 읽어가도록 합시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음, 요한님이 계속 이어서 읽어주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요한이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7장 끝- 보으
일곱 번째 계단에 올라서, 여덟 번째 계단으로 향합니다.
'성경 강해 소설 (신약편) > 마태복음 - 28계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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