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소설은 소설의 형식으로
구성한 이야기식 강해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성경의 구성형식으로
장과 절을 구분하였지만,
원본은 하나의 통으로 된 서신이었음을
생각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성경을 옆에 두고 참고하시면서 보셔도 좋습니다.
강해 소설에서 인용하는 한글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이며
영어 성경은 ESV (English Standard Version)입니다.
보아스가 서신을 읽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살몬이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우선은 여기까지 읽으면 되겠다.”
살몬의 말에 보아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1 그때 그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세례 요한이 분명하다.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는 이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3 헤롯이 전에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가둔 일이 있었다.
4 그것은 요한이 헤롯에게 '당신이 그 여자와 결혼한 것은 잘못입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5 헤롯은 요한을 죽이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였다.
6 마침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였다.
7 그러자 헤롯은 그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그녀에게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래서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제게 주십시오.' 하고 요구하였다.
9 왕은 몹시 괴로왔으나 자기가 한 맹세와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에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 갇혀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11 그리고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예수님께 가서 이 일을 알렸다.
[마태복음 14장 1절-12절]
여기까지 읽었습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요한 선지자님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군요.
그런데 시작은 분봉왕 헤롯의 마음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그 마음이 드러났지요.”
그러자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맞소이다.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말했지요.
이것은 요한 선지자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신하들에게 들으라고 말해주었지요.
지금 헤롯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직접 와서 예수님을 만났겠지요.
헤롯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자기 정당화를 합니다.
요한 선지자의 죽음의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목적입니다.
헤롯을 다스리는 마음의 법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 법은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의 법입니다.
방금 읽은 내용을 보십시오.
요한 님을 잡아서 가둔 것은 헤롯 자신입니다.
헤롯이 자기도 이혼을 하고 동생의 아내도 이혼을 시켜서 그 여자와 결혼했지요.
그런데 요한 님이 이 죄를 지적합니다.
헤롯은 이 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의 마음의 법이지요.
그래서 요한 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을 따르고 있지요.
그렇게 주님의 길을 만들던 요한 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죽이지는 못하지요.
대중이 요한 님을 선지자로 믿기 때문입니다.
역시 자기 마음의 법 때문에 무서워서 죽이지는 못했지요.
죽이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일 잔치를 열었지요.
여기서 자신의 새 아내의 딸의 춤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지요.
그러자 그 아이가 엄마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요한 님의 머리를 달라고 했지요.
왕의 괴로워하다가 그대로 명을 내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나옵니까?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손님들이 누구였겠습니까?
갈릴리 지역의 왕의 신하들입니다.
그 지역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입니다.
자기들끼리는 정치적, 종교적으로는 대립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 마음으로 요한 님의 죽음을 원했지요.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롯 왕이 자기 마음을 저울질합니다.
대중의 마음과 손님들의 마음을 저울질합니다.
그리고는 손님들의 마음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요한 님이 죽게 되었지요.
그리고 나서 헤롯 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지요.
그러자 신하들에게 요한 선지자가 다시 살았다고 말합니다.
백성들이 들으라고 변명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말이지요.
“나는 요한 선지자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잔치 자리의 손님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그리고, 요한을 죽이라고 했던 손님들아,
너희들이 이 사태를 수습해라.”
이렇게 헤롯의 마음의 법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요.
자기 왕위를 유지하는 일만 신경쓰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한 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합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예수님에게 갔지요.
예수님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한 것인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구절에 예수님의 반응이 나오겠지요.
보아스야, 계속 읽어주렴.”
살몬의 말에 보아스가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13 예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혼자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가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여러 마을에서 나와 걸어서 예수님을 따라갔다.
14 배에서 내린 예수님은 많은 군중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이 곳은 벌판인 데다가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십시오.'
16 '갈 것 없다.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17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18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19 그리고서 예수님은 군중들을 풀밭에 앉히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것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그들은 모두 실컷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나 거뒀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약 5,000명이었다.
22 예수님은 군중들을 돌려보내시는 동안 제자들이 서둘러 배를 타고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
[마태복음 14장 13절-22절]
살몬이 보아스에게 신호를 주자 읽기를 멈추었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군요.
그런데 혼자 배를 타시고 조용한 곳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반응이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길에 집중하시기 위함이지요.
요한 선지자님의 제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온 땅에 그분의 죽음이 알려졌을 것입니다.
요한 님의 제자들이 무엇을 요구했을까요?
예수님에게 정의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요한 님을 선지자로 믿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그 제자들과 같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정의를 행해주시기를 원했겠지요.
헤롯 왕이 우려하는 혁명의 전조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대중은 자기들의 마음의 법을 따라서 정의를 요구합니다.
헤롯 왕과 그 무리를 심판하라는 것이지요.
헤롯 왕은 자기 마음의 법을 따라서 변명을 합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내 주변 인물들이 잘못이라 탓합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너무나도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마음의 법을 따라서
예수님이 그대로 움직여 달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완성하고자 오셨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요.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너도할례가 말을 받았습니다.
“살몬 선생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시는 그 방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요한 님의 복수를,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이지요.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망하고 돌아갔겠지요.
말씀이 이 사실을 확인해줍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십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지요.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적용 대상입니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정의는 요한 님의 복수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적용을 받고자 하는 믿음이지요.
그 믿음을 가지고 배를 타신 예수님을 걸어서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집중하시는 일을 행하실 수 있게 되었지요.
분위기가 반전이 된 것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또 다른 형태로 시행해주십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남자만 오천명이 모였지요.
먹을 것은 떡 5개와 생선 2마리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시행되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모두가 배불리 먹는 기적이 나타났지요.
그리고 12광주리나 남았으니까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의는 불법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셨지요.
예수님의 정의는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있을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구하고 또 그 법으로 살았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자비의 법을 믿지 않고 산 사람들은 그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심판이지요.
지금 읽는 내용에서 이것이 드러나고 있지요.”
이미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또 제자들만 따로 보내셨을까요?
이것도 이 서신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용을 보면 알겠습니다.
보아스가 읽어줄까?”
보아스가 다시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4 군중을 다 보내신 후에 예수님은 기도하시려고 혼자 산에 올라가셔서 날이 저문데도 그 곳에 홀로 계셨다.
25 그러나 배는 이미 육지를 떠나 상당히 멀리까지 갔는데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벽 4시쯤 되어 예수님이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며 '유령이다!' 하고 소리쳤다.
27 그러자 예수님은 즉시 '나다. 무서워하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였다.
29 예수님이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을 향해 갔다.
30 그러나 그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31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시자 바람이 멎었다.
33 그때 배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였다.
34 그들은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 지방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 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변 지역에 다 연락하여 모든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36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며 옷자락을 만진 사람은 모두 나았다.
[마태복음 14장 24절-36절]
여기까지 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큰 기적을 행하시고 혼자 남으십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 남으셨다고 했지요.
앞에 나온 요한 선지자님의 제자들이 왔을 때와 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는 일에 집중하시고자 하지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자분들을 따로 보내셨습니까?
같이 기도를 해도 되지 않나요?”
그러자 일리마가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제자분들의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요한 선지자님의 제자들이 올 때부터 그랬지요.
그분의 죽음을 듣고 다들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분노했습니다.
요한 선지자님의 제자 출신들은 더 했지요.
사도 요한님과 야고보님이 그랬습니다.
저희들과 요한 선지자님의 제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앞장서서 참교육을 시켜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 없이 배를 타자고 하셨지요.
제자분들은 어쩔 수 없이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요한 선지자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지요.
같이 왔던 흥분한 사람들도 실망하고 가버립니다.
다들 배를 타고 말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만 머리에 가득했지요.
일부 제자분들은 분을 삭히지 못했지요.
목적지도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배를 따라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요한 님의 죽음을 듣고 일어났구나.
이제 메시야 예수님이 행동하실 때구나.
새로운 왕, 새로운 왕국이 시작되려나?’
제자분들도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다들 저와 같은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이들을 기뻐하면서 바라보지 않으셨지요.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면서 말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배에서 내려야겠습니다.
배를 해변에 대주세요.”
제자분들이 속으로 기뻤지만,
예수님 표정이 안 좋으시니,
표정을 관리하면서 급하게 배를 해변에 댑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면서 모여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병이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었지요.
그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 자비로 치유를 받고자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들은 너무나 실망했지요.
사람 수가 많기는 했지만,
혁명에는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고쳐주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셨지요.
사람들은 치유를 받고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치셨지요.
저희들이 들어왔던 그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말씀을 달게 들었습니다.
저희들도 마음을 다시 잡았지요.
그리고 오병이어를 행하셨습니다.
엄청난 기적이었지요.
그런데 그 기적이 저희들을 흔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기적이 어떻게 제자분들의 마음이 흔들리게 할 수 있습니까?”
일리마가 다시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예수님의 자비의 법을 다시 보고 배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혁명의 가능성이었지요 .
이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워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지요.
다들 흥분했지요.
지금 이 사람들은 오합지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면 달라질 것이 기대가 되었지요.
제자들이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나서십니다.
저희에게 말했지요.
“여러분은 바로 배를 타고 건너가세요.
저는 사람들을 돌려 보내야겠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신경쓰지 말고 먼저 가세요.”
저희들이 이 무리에게 무슨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으셨지요.
너무 안타까웠지만,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들 실망 속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지요.
제자들은 큰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왜 오셨고,
무슨 일을 해야하시는 지를 잊어버렸습니다.
배를 타고는 저희끼리 토론을 벌였지요.
예수님이 왜 이러시는지에 대한 토론이었습니다.
그 결론이 나기도 전에,
평소에 없던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만난 것입니다.”
일리마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너도할례가 말을 했습니다.
“지금 제자분들이 실망이 큽니다.
그런데 또 가는 길도 쉽지가 않습니다.
밤새 파도와 바람에 밀려 떠돌고 있지요.
죽음이 공포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서 오십니다.
죽음이라는 어두움만 보던 제자들이 놀랐지요.
눈이 어두움만 보니 어두움으로 반응합니다.
예수님이 유령으로 보였고 두려워합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안심을 시키셨지요.
“접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하십니다.
빛이 하나님의 자비로 나타난 것이지요.
이제 눈이 다시 빛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몸이 반응합니다.
베드로 님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이지요.
그런데 왜 베드로 님께서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했을까요?
이게 갑자기 궁금하군요.”
너도할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봅니다.
자기들에게 위해서 오시고 있는 예수님이지요.
돕고자 오셨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는 사람들을 돕고자 물 위를 걸으십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베드로 님께서 마리아 님에게 말했지요.
정말 예수님의 그 모습에 힘이 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어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또 따라가고 있는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 법을 통해서 돕고자 오시는 예수님을 깨달았다고 했지요.
자비의 법 안에 있음을 확신했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도 기억이 났지요.
그래서 예수님처럼 해보고자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말 오라고 하셨지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님을 말리지 않으셨지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오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믿음을 선포하는 사람에게 적용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물 위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다시 가라앉습니다.”
에스더가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이 자비의 법을 이긴 순간일까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는 물 위를 걸을 수가 없지요.
거센 파도를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어두움이 보이고,
몸이 어두움에 있는 것과 같이 움직이지요.
그렇게 가라앉습니다.
예수님이 이 상황을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사실 오늘까지도,
물 위를 걸을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베드로님 뿐입니다.
엄청난 믿음이지요.
하지만 환경을 보고 저울질을 하는 순간에,
내 믿음의 크기가 드러납니다.
엄청난 믿음으로 시작했어도
내 마음의 법이 작용하기 시작하면
환경의 두려움이 믿음을 압도하지요.
그러면 적은 믿음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는다면,
오직 그 법에 집중하고,
이 법이 환경의 두려움도 압도하도록,
자비의 법만이 내 마음을 채워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지요.
보아스가 읽은 부분이 시작이고 결론입니다.”
너도할례가 말을 했습니다.
“맞소이다.
예수님이 배에 타시니 바람이 잔잔해졌지요.
제자들이 께달았습니다.
이 분은 하나님의 권세로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분의 정의는 죄인의 처단이 아님을 알았지요.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적용시키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음의 법을 바꾸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오셨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일리마가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저희들은 그 진리를 깨달았지요.
환경 때문에 잠시나마,
예수님에게 내 마음의 법을 만족시켜 달라고 했던,
그리고 예수님의 반응에 실망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모여들었던 다른 사람들과 같았지요.
하지만, 다시 우리가 왜 예수님을 따르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의 법을 배우고자 따랐지요.
그 법이 내 마음이 법이 되도록 만들고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흔들리던 우리 마음을 예수님이 자비의 멍에로 인도하신 것이지요.”
이미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을 잡아주십니다.
또한, 원래 걸으셔야 하는 주님의 길에 집중하십니다.
이제 게네사렛 지방에 도착하셨지요.
이스라엘의 땅이 아닙니다.
이곳은 돼지 수천마리가 죽었던 지방입니다.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간청했던 사람들이 살았지요.
그런데 이번 반응을 보십시오.
그러자 그 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변 지역에 다 연락하여
모든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며 옷자락을 만진 사람은 모두 나았다.
마태사도님이 이렇게 쓰셨지요.
놀라운 대반전입니다.
지난 번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서,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졌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안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만 몰래 오지 않습니다.
주변 지역에 다 연락을 돌립니다.
그리고 모든 병자들을 대려왔지요.
이들의 변화된 믿음을 보십시오.
떠나달라고 간청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만진 사람이 다 낳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 대한 믿음이 생겼지요.
제자들이 보고 더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지요.
그 법을 믿고 의지하고,
그 법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도 배웠겠지요.”
일리마가 말했습니다.
“맞소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못했지요.
아직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지는 못했습니다.
아직은 예수님이 잡아주시는 방향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나아갈 뿐이었지요.
예수님도 급하게 보채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저희의 멍에를 조종하셨지요.
하지만 세상은 저희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지요.”
살몬이 말을 했습니다.
“네, 일리마님의 말씀대로지요.
세상은 믿고자 하는 사람을 놔두지 않습니다.
계속 흔들고 시험을 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시작을 기억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었지요.
그 법의 적용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법으로 살기를 꿈꾸지요.
이 시작을 잊지 않으면,
예수님이 멍에를 조종해주십니다.
이제 잠시 쉬도록 하지요.
서신도 절반 정도 본 것 같습니다.
다시 모일 때는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살몬이 말을 마치자, 다들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 마태복음 14장 끝
열 네 번째 계단에 올라서,
열 다섯 번째 계단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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