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소설 28계단이 이제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자축의 나팔을 불고 15번째 계단으로 향합니다.
마태복음 15장
사람들이 모이자 살몬이 다시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1 그때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2 '당신의 제자들은 왜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온 전통을 깨뜨리고 있습니까? 그들은 식사할 때 손을 씻지 않습니다.' 하였다.
3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왜 너희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4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5 그런데 너희는 누구든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만 하면
6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런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였다.
7 위선자들아, 바로 너희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잘 예언하였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9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10 예수님은 군중들을 가까이 불러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하고 말씀하셨다.
12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주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화가 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묻자
13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다. 그러니
14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15 이때 베드로가 '그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자
16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두 뱃속을 거쳐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그리고 비방이다.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며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5장 1절-20절]
우선은 여기까지 읽어볼께요.”
너도할례가 말을 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나오는군요.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 서신이 시작할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근심했지요.
이 온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제가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여론을 주도하고,
실권을 장악한 사람들이지요.
바로 지금 나온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지요.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방박사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지요.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사역을 하고 있지요.
그러자 예수님을 보고자 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배우려고 온 사람들은 아니지요.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이
자기들의 마음의 법에 맞는지 아닌지를 보러왔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에 맞추도록 만들고자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목적이 있었지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흔드는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미 보고가 많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면,
예수님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마침 예수님의 제자분들이 식사를 하는데,
손을 씻지 않았지요.
율법에서 나온 전통을 어긴 행위지요.
바리새인들과 학자들이 예수님에게 항의를 합니다.
제자분들이 얼마나 놀라고 민망했겠습니까?
그런데 할 말이 없습니다.
전통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기세가 당당했겠지요.
여기서 예수님을 눌러서 자기들 휘하에 두던지,
아니면 대중 앞에서 거룩하지 못한 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릴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협하지 않으셨군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권위 있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권고를 받아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따르지요.
그 법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이들은 다르지요.
이들은 사람의 마음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로 율법을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은 타협이 가능합니다.
자기들의 마음의 법이 달라도,
서로 주고 받을 여지가 있지요.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자비의 법과는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내 마음의 법을
버려야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일한 진리가, 진리가 아닌 것과 타협할 수가 없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의 법이 얼마나 타협이 가능한지를
예수님이 지목하셨군요.
전통을 위해서 율법을 어기는 예를 들어주십니다.
고르반(부모공경 대체법-저자가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의
전통을 지목하셨지요.
서로 타협을 해서 율법을 대체하는 전통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람의 전통이 율법을 이긴 것이지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선지자 이사야님을 인용했지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전통은 율법을 무시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지요.
율법을 잘 지켜보려고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율법을 잘 지킨다는 표준이 무엇인가 입니다.
내가 한 일이 율법을 지킨 것인가? 아니면 어기고 있는가?
사람들은 누군가의 확인을 원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구하지요.
특별히 종교적인 권위가 있는 분들의 인증을 원합니다.
사실, 율법은 아주 막연하지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한 마디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묻지요.
“그러면 무엇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아침마다 인사를 드리는 건가요?
부모님이 50세가 넘으면 내가 모시면 되나요?
생신 때마다 레위인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면 되나요?”
이런 상세한 항목이 없지요.
사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는
상세한 항목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 마음을 채운 그 법대로
행하면 되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마음의 법은 상세한 항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의 인증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보다 남의 인증이 중요하지요.
허례허식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남몰래 하는 것보다, 남들 앞에서 보여야 만족이 됩니다.
부모 공경이라는 인증을 받는,
이 고르반이라는 전통에 사람들이 마음이 더 끌리는 이유지요.
고르반의 전통을 행할 때에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 계명을 지키고자
이 예물을 드린다고 말하지요.
그 예물이 클수록 주목을 받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이 전통을 지키도록
종용하지요.
이 마음을 이용해서 자기 유익을 챙기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예수님은 위선자들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적도 없지요.
하나님은 원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법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 헛된 예배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만남을 지켜봅니다.
그 대화를 다 듣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갈릴리까지 왔지요.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의 편이 아님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대답도 듣고 있지요.
자기들끼리도 토론도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군중들을 더 가까이로 부르셨지요.
그리고 이 말씀을 하셨지요.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말해주시지는 않았지요.”
에스더가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사가
예수님의 관심사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군중들도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손을 씻고 식사를 하는 전통에 대한 것이지요.
이것이 정결한 것인지 부정한 것인지를 다툽니다.
여기에만 관심이 쏠려있지요.
제자분들의 마음도 이들과 같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부정한지 정결한지만 걱정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의 눈치를 보고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눌린 마음을 풀어주고자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말씀해주신 것이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그러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제자분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걱정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자극했다고 염려하지요.
사람의 마음의 법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해석과 그 반응이네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맞소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깨우쳐주셨지요.
예수님은 그들을 내버려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이 상황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의 마음의 법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이들이 갑중에 갑입니다.
높으신 분들을 자극할 이유가 없지요.
이 분들과 잘 타협하고 절충해야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서는 예수님이 갑중에 갑입니다.
유일하신 왕이시지요.
왕이 불법을 저지르는 신하들을 바로잡고자 가르치는데
그들이 오히려 왕에게 화를 낸다?
이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일까요?
지금, 사실은 예수님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불에 뛰어드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을,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넘어가십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라고 하셨지요.
어차피 뽑힐 나무들이고,
눈이 먼 인도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눈이 열렸습니다.
왕의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권위자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이 보였지요.
자기들 앞에서 물위를 걸으신 분입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한 분입니다.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분들의 멍에를 조정해주고 있지요.
다시 주님의 길에 올라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상 궤도에 오지는 못했군요.
아직도 바리새인들의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마음이 찜찜하니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을 못합니다.
그래서 비유의 의미를 물어봅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역시 마음의 법을 지목하십니다.
자기 마음의 법에서 나오는 말,
그 말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셨지요.
사람의 마음의 법에서 나오는 것도 가르쳐주십니다.
쪽집게 강사처럼 콕 찍어 주십니다.
먼저, 악한 생각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지 않는 생각입니다.
살인이 나오지요.
자비의 극한 반대점에 있습니다.
간음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이 아닌 사람의 마음이 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의 결과물입니다.
음란이 나옵니다.
내 마음의 법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법과
끝없이 타협하는 마음의 결과물이지요.
도둑질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을 훔쳐서 내 마음의 법을 따라
조정하려는 마음의 결과물입니다.
거짓 증언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사실이 아니라고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마음의 결과물입니다.
비방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실행을 보면서도
그 법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떠드는 마음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을 말해주셨지요.
그리고 이 기준으로,
누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를 알라고 하십니다.
혈통과 사람의 권위로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율법과 전통을 지키는 순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는 이들이 그 백성입니다.
그 법을 믿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가르쳐주셨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자, 그러면 제자분들이 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얼마나 자유함을 얻었는지가 나오겠군요.
제가 이어서 읽겠습니다.
21 예수님은 그 곳을 떠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그때 그 지역에는 한 가나안 여자가 나와서 '주님, 다윗의 후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 딸에게 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23 그러나 예수님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 여자가 소리치며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쫓아 버리십시오.' 하였다.
24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나는 잃어버린 양과 같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보냄을 받았다.' 하시자
25 그 여자는 예수님 앞으로 와서 절하며 말하였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26 '자녀들의 빵을 빼앗아 개에게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
27 '주님,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28 '정말 네 믿음이 크구나!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마태복음 15장 21절-28절]
여기까지 입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군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이라면 이방인들의 땅이고 죄악의 성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왜 갑자기 그곳을 가셨을까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을 위해서 가셨겠지요.
여기는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악의 소굴입니다.
앞에 나온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곧 바로 쫓아갈 수가 없지요.
두로와 시돈에서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모든 생활이 전통을 지키면서 하기가 어렵습니다.
순수 유대인이라면 먹을 것부터 입을 것까지
충분히 준비를 하고 가야 하지요.
예수님이 굳이 이곳으로 가신 이유가 있겠지요.
일리마 님에게 들어보는 것은 어떨지요?”
너도할례의 말에 일리마가 대답했습니다.
“사실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손을 씻는 전통을 어겨서 지적을 당했지요.
예수님이 그 부담에서 자유케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으로 출발하기 직전에도,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또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전통을 어긴 저희들을 저주하고,
저희를 옹호한 예수님을 비방하는 소문을 냈습니다.
식사 때마다 예수님은 괜찮다고 하셔도,
은근히 다들 손 씻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지요.
예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정색을 하시고는
바로 두로와 시돈으로 저희를 대려가십니다.
저희들은 다 긴장했습니다.
사실 저희들 중에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본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회당에서 늘 듣던 내용은 그곳은
악의 땅이고 죄악의 도시라는 말뿐이었지요.
가보니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겠더군요.
조상의 전통을 지키기는 커녕,
율법도 지키기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겼지요.
두로와 시돈에 오신 예수님이 변했습니다.
전에 안하던 조상의 전통을 챙기셨지요.
음식 메뉴를 다 검사하십니다.
식사 전에 정결예식을 손수 챙기십니다.
식당과 숙소의 정결여부도 까다롭게 보셨지요.
남의 나라에서 이런 것들을 챙기려니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라도 어기면 불호령을 내리셨지요.
도착 첫 날부터 예수님 눈치를 보느라
다들 주눅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님은 얼마나 혼났는지,
밤새 끙끙대며 잠꼬대를 하셨지요.
그러다가 이 가나안 여인이 나타난 것이지요.
유대인도 아닌 이 여인이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지요.
또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구했지요.
귀신들린 딸을 구해달라고 외쳤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이니,
저희들도 마음이 요동을 쳤지요.
눈물이 절로 나는 호소였습니다.
평상시의 예수님이라면 바로 고쳐주실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시하시고 길을 가셨지요.
여인이 포기하지 않고 부르짔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분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저희들이 쉽게 나설 상황이 아니었지요.
유대인 여인이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입니다.
혹시라도 부정해질까봐 다들 피했지요.
도와달라고 저에게도 손을 내밀면서
제 겉옷을 잡으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그 여인과 거리를 두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요.
제자들도 그 여인이 자기 옷이라도 잡을까봐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도 그 상황을 보시면서도 그냥 놔두십니다.
저희들끼리 몰래 대화를 나누었지요.
“예수님이 고쳐주실 마음이 없으신데?”
“이거 불쌍해서 어떻하지?”
“요한, 자네가 잘 말해봐.”
“무슨 소리야! 지금이 그럴 상황인가?”
“지금 분위기에 이방여인을 고쳐주시겠어?”
하지만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불쌍했지요.
그래서 제가 꾀를 내었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에게 저 여자를 쫓아버려달라고 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하실 때에 틈을 봐서,
왠만하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냥 보내시겠어요?
평상시대로 치료해서 보내주시겠지요.
어떻습니까?”
다들 제 의견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몇 분이 예수님께 말을 했지요.
“예수님, 저 여자가 너무 시끄럽게 떠듭니다.
저희가 밀어내려면 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부정해질 수 있어서요.
예수님이 직접 말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러자 예수님이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는
냉정하게 말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당신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인가요?”
그 말에 저희들은 놀랐습니다.
아니 로마 백부장의 하인도 고치셨고,
이방인들도 고치시던 분이 갑자기
말을 바꾸신 것이 되었지요.
이 여인을 도와주자고 말을 하려던
제자분들의 입이 막혀버렸습니다.
다들 할 말을 잃어버린 상황이지요.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돌진합니다.
저를 비롯한 제자분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어어, 안돼! 야, 누가 잡아!”라고 말만했지요.
이방 여인을 함부러 만졌다가
예수님에게 혼날까봐 다들 소리만 질러댈 뿐,
그 여인을 잡고 막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예수님께 절을 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그 간절한 말을 반복합니다.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어머니의 호소였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하셨습니다.
“자녀가 먹을 빵을 개에게 주어야 합니까?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요.”
이 말을 듣는 저희들은 또 놀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지요.
저희가 아는 바로도,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방인들은 택한 자녀들이 아니기 때문이었지요.
너무 안타깝지만 맞는 말씀이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말합니다.
“주님 맞습니다.
하지만 개도 그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예수님이 반응하셨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변하셨지요.
예전에 그 자비로운 얼굴로 바뀌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기뻐하셨습니다.
엎드린 여인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지요.
그리고는 제자분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다 바라보십니다.
그 눈으로 말씀하고 계셨지요.
“여러분들, 이제 좀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자비를 찾는 사람입니다.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이 자비의 법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이 법만이 줄 수 있는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누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인지 보이십니까?
이 법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기뻐하시면서 말하셨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정말 큽니다!
그 소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의 딸은 자유하지요.”
그러자 그 여인이 울면서 감사를 드렸지요.
그리고 기뻐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저희들도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의 큰 짐이 덜어지는 것을 느꼈지요.
예수님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이곳에 온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이제 다시 돌아갑시다.”
그렇게 저희들은 깨달음을 얻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지요.”
일리마가 말을 마쳤습니다.
그러자 살몬이 말했습니다.
“역시 예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 또 조금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9 예수님은 그 곳을 떠나 갈릴리 호숫가를 따라가시다가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30 사람들이 앉은뱅이, 절뚝발이, 소경, 벙어리, 그 밖의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 앞에 앉히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다 고쳐 주셨다.
31 벙어리가 말하고 절뚝발이가 성해지고 앉은뱅이가 걷고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32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군중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3일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구나. 저들을 굶겨서 그대로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가는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33 '이 벌판에서 이처럼 많은 군중들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34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일곱 개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물고기 몇 마리도 있습니다.'
35 예수님은 군중들을 땅에 앉히시고
36 빵 일곱 개와 그 물고기를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것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그들은 모두 실컷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뒀으며
38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약 4,000명이었다.
39 예수님은 군중을 돌려보내신 후에 배를 타고 마가단 지방으로 가셨다.
[마태복음 15장 29절-39절]
여기까지 입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저희들이 많이 들었던 기적이 나왔군요.
칠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에서 다시 돌아오셨지요.
그러자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려오고 예수님은 다 고쳐주셨지요.
예수님이 잠시 갈릴리를 비우셨지요.
그동안에 많은 말들이 있었겠지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비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마음이 된 사람들의
비난과 비방의 말들도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오시자,
다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지요.
사람들이 치유를 보고 놀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 아래에서 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의 백성, 하나의 무리가 되었습니다.
천국의 모습이지요.”
에스더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비판과
비방의 말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유대교의 권위자들의 비방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택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택한 것이지요.
허허벌판에서 예수님과 삼일을 함께 합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법을
듣고 받아들일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사람의 마음의 법이 예수님을 대적하면 대적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열심히 모이는 상황이 되었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먹을 것을 주셨지요.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일을 행하시는 권능을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행하십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또 돌려보내셨지요.
이번에는 제자들과 함께 돌려보내셨습니다.
제자분들의 마음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볼 때보다는
더욱 더 성장했다는 말이되겠지요?
제자 분들이 사람의 마음의 법보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 더 집중하게 된 것이네요.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마가단으로 갔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멍에 조정은 정말 감동이 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혜를 넘어서는 지혜와 온유함이지요.
이 서신을 보고 있는 저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도 놀랍습니다.
자, 이제 마가단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읽어봅시다.
이번에는 미리암 자매가 읽어주실까요?”
그러자 미리암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15장 끝
열 다섯 번째 계단에 올라서서
열 여섯 번째 계단을 향해갑니다.
'성경 강해 소설 (신약편) > 마태복음 - 28계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계단 - 17)열 일곱 번째 계단 (17장) (0) | 2024.08.20 |
---|---|
28계단 - 16) 열 여섯 번째 계단 (마태복음 16장) (0) | 2024.08.16 |
28계단 - 14) 열 네 번째 계단 (마태복음 14장) (0) | 2024.08.09 |
28계단 - 13) 열 세 번째 계단 (마태복음 13장) (0) | 2024.08.07 |
28계단 - 12) 열 두 번째 계단 (마태복음 12장) (0) | 2024.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