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열 일곱 번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너도할례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 시작하겠소이다.
1 엿새 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2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모습이 변하여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희었다.
3 그런데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4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이 곳에 천막 셋을 세워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각각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고 구름 속에서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6 제자들은 그 음성을 듣고 너무나 무서워 땅에 납작 엎드렸다.
7 그러자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서 제자들을 어루만지며 '무서워 말고 일어나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하고 당부하셨다.
10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렇다면 왜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하고 묻자
11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실 엘리야가 벌써 왔어도 사람들이 그를 몰라보고 함부로 대하였다. 이와 같이 나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태복음 17장 1절-13절]
여기서 잠시 멈추도록 하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변화산이 기적이 기록되어 있군요.
예수님이 모세님과 엘리야님과 대화하신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지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말해주셨지요.
그리고 나서 6일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6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군요.
제자들이 6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받은 약속을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듭니다.
이것을 다른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하셨지요.
당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민해야 하는 6일이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이 제자분들 일부를 부르셨군요.
베드로님, 야고보님, 요한님 세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지요.
그곳에서 갑자기 모습이 변하셨다고 합니다.
얼굴이 태양처럼 빛났지요.
옷도 눈부시게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모세님과 엘리야님까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제자분들이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다른 계시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이 세분의 제자들을 예수님이 선택하셨지요.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또 다른 계시가 맞지요.
앞에서 베드로님이 하나님의 계시로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이지요.
지금, 예수님은 베드로님이 받은 계시를 직접 눈으로 보게 해주십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계시를 통해서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말인가요?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제가 설명해 보도록 하지요.
앞에서 베드로님이 계시를 받아서 고백을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예수님은 이 고백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해주셨다고 분명히 말하십니다.
하나님이 베드로님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보여주셨지요.
이것이 계시(Reveal)가 됩니다.
베드로님이 이 계시를 믿겠다는 결단을 했지요.
그 고백에서 믿음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교회를 세운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결단을 통한 믿음은 시작일 뿐입니다.
반석과 같은 믿음은 사람의 힘으로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요.
앞에 읽은 부분에도 이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음이 생긴 베드로가 첫 번째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예수님이 계시 해주신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석처럼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아니었지요.
예수님은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지도록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시작과 완성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주실 수 있지요.”
에스더가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사람이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제자분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베드로님의 말입니다.
'주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이 곳에 천막 셋을 세워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각각 모시겠습니다.'
라고 말했지요.
지금 예수님의 본 모습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에 주목하지 않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지요.
그저 현상을 보고 놀랄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베드로님의 제안이 끝나기도 전에 말씀하셨지요.
더 큰 계시를 해주신 것이 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말을 계시로 알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님이 예수님과 대화를 했지요.
무슨 말씀을 했을까요?
날씨 이야기? 이스라엘의 정치?
로마의 정치, 경제?
최근의 사회적인 문제였을까요?
지구 온난화? 천국의 근황?
아닙니다.
분명히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내용을 말했겠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이 말이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하실 수 밖에 없었지요.
현상에 흔들리지 말고 내 아들의 말에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방법이 제자들이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질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성령님께서 완성해 주실 믿음이 되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이 반응을 보십시오.
두려워서 땅에 납작 엎드립니다.
이들을 세워주시는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무서워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십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내려오시는 길에 예수님이 다시 부활을 말하셨지요.
십자가 부활의 때까지는 지금 계시를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직 제자분들이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예수님의 부활로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계시의 완성이지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분들의 질문이 좀 뜬금없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라는 질문 말이군요.
제가 답해드리지요.
메시아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이 있지요.
그중에 말라기 선지자님의 예언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를 먼저 보낸다고 하셨지요.
율법학자, 즉 서기관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올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할 왕이 메시아가 됩니다.
제자들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고 있지요.
그리스도이자 나의 주인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자기들이 보고 받은 계시로는 이 진리를 부정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지식과 지혜의 한계는 이 계시를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엘리야에 대한 예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답을 주셨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와서 바로잡을 것이라고 하였지요.
말라기 선지자님은 다시 올 엘리야의 사명을 말했지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합니다.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분들의 머리에 떠오를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이미 엘리야는 왔었다고 했지요.
제자분들의 머리 속에 이런 사역을 하신 분이 떠오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 엘리야를 막 대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누구를 말하시는지 더 잘 이해했겠지요.
바로 세례 요한 선지자님이 됩니다.
그런데 주목할 내용이 있지요.
예수님이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나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계시를 주목하고 믿으라고 말해주시고 있지요.
이 말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소이다.
이제 이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4 그들이 군중들에게 돌아오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15 '주님,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가 간질병에 걸려서 몹시 고생하며 자주 불에 넘어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고치지 못했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너희를 보고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8 그리고서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바로 그 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와서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향해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거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며 너희에게 못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21 (그러나 이런 귀신은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22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였을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내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23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큰 슬픔에 잠겼다.
[마태복음 17장 14절-23절]
여기까지 읽겠소이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제자분들이 민망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귀신들려서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했지요.
사도의 권능을 받은 사람들이 제자분들입니다.
지금까지 그 권능을 사용해왔지요.
그런데 지금 이 법을 실행할 권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지요.
제자분들의 믿음이 흔들렸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미리암 자매님의 말씀이 맞지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제자분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상황을
‘믿음이 없고, 삐뚤어진 세대’라고 표현하십니다.
제자분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었지요,
그 권능으로 치유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계시를 받자,
이 믿음이 흔들려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계시입니다.
예수님은 더 큰 믿음을 주시려고 계시를 주었지요.
그러자 제자분들의 마음의 더 깊은 속에 남은
내 마음의 법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지요.
예수님이 더 힘을 주시려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오히려 더 삐둘어지게 나가버렸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부분이지요.
예수님은 ‘너희를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가?’라고 말하십니다.
‘언제까지 너희와 있어야 하는가?’라고도 말하셨지요.
이것은 분노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제는 듣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말씀과 같지요.
“여러분들은 나를 왜 따르고 있나요?
나에게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닌가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지요.
여러분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나를 따르지 않나요?
그러려면 내가 믿는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나와 같은 믿음을 원해야 합니다.
나처럼 내 하늘 아버지를 신뢰해야 합니다.
나와 같은 믿음을 달라고 아버지께 구해야 합니다.
사람의 의지를 뛰어넘는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만이 주십니다.
이 믿음을 구해야지요.
아직도 이것을 깨닫지 못한 것인가요?”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내용이 아닌가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소이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해주셨지요.
제자들이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자기들끼리는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전에는 되던 일이 왜 안되지요?
이 귀신은 더 쎈 귀신이라서 그런가요?
뭔가 더 특별한 수련이 필요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너희의 믿음이 적다고 말하십니다.
그런데, 겨자씨만한 믿음을 말하십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은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가능하다고 하시지요.
뭔가 앞뒤가 안맞는것 같다구요?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이라서 그런가요?
자, 이 너도할례님이 설명을 해드리지요.
예수님은 제자들도 믿음이 있다고 하십니다.
없다고 하시지는 않았지요.
이들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남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네, 예레미야네, 부활한 요한이네,
선지자들 중에 하나네라고 떠들때입니다.
다들 다른 소리를 하고 있지요.
오직, 제자들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적은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고 여기에 생명을 걸었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든 믿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요.
예수님은 이 믿음을 적은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사도로써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도 적은 믿음이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이 택하셔서 계시도 받은 믿음입니다.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고백을 하게 맏는 믿음이지요.
예수님은 이 믿음도 적은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큰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있지요.
정말 믿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가지려는 믿음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벗어나는 계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한계가 드러나지요.
그 순간에는 지금까지 가진 믿음도 흔들립니다.
제자들이 하던 일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는 적은 믿음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하시는 겨자씨만한 믿음은 무엇인가요?
바로 내 생각을 벗어나는 계시까지 믿어지게 만드는 믿음입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믿음이지요.
그러면 이 믿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바로 이런 믿음을 달라고 구하는 기도와 금식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과 같지요.
일부만 인용해 볼까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간단하게 이 구절만 봅시다.
하늘, 즉 천국은 하나님의 계시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서 나온 계시들입니다.
이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것을 믿게 해달라고 구하지요.
하나님의 계시가 모두 이루어진 것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금식은 무엇인가요?
내 마음의 법으로 인해서 오는 한계를 알고
이 한계를 돌파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간구입니다.
예를 들어서 봅시다.
우리 무역법으로 거래를 할 수 없는 품목이 있다고 합시다.
이 품목을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밀수지요. 이것은 불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법을 개정하면 됩니다.
기도와 금식이 내 마음의 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지요.
내 마음의 법은 늘 한계를 정합니다.
그 법을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계정하면
그 한계가 없어지지요.
사람의 노력으로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내 마음의 법으로 개정해서,
이 법에서 나오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구하는 간구가 기도와 금식의 목적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이 믿음의 한계를 보여주십니다.
사람의 믿음의 한계를 알게 하시지요.
이어지는 말씀과 같지요.”
그러자 요한이 말했습니다.
“아,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나왔군요.
제자분들이 다시 갈릴리에 모였지요.
또 며칠의 시간이 지났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믿음의 한계를 보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할 시간이 있었지요.
진짜 기도와 금식을 한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했지요.
그런데 제자분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깨우치지는 못한 것이지요.
자기들의 믿음의 한계를 계속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온전히 깨닫지도 못한 상황이군요.
마음이 심란하고 침체된 상황입니다.”
에스더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분들을 늘 잡아주시지요.
이어지는 말씀에도 나오지 않을까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에스더 자매가 감이 좋군요.
제가 미리 좀 봤는데,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디 조금 읽어볼까요?”
너도할례가 서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 봅시다.
24 그들이 가버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세 받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당신들의 선생님은 성전세를 안 바칩니까?' 하고 물었다.
25 그래서 베드로는 '아닙니다. 바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받아들이느냐? 자기 아들들에게서냐,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냐?'
26 그때 베드로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너는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먼저 잡히는 고기의 입을 벌리면 은화 한 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너의 성전세로 주어라.'
[마태복음 17장 24절-27절]
이 말씀입니다.
자, 예수님이 우울한 제자들을 이끌고 가버나움에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성전세 받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왔지요.
예수님의 성전세를 달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알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예수님이 기적을 통해서 베드로의 성전세까지 내주십니다.
이런 방법으로 슬픔에 잠긴 제자들을 회복시켜 주셨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마리아님을 통해서 들은 내용과 같습니다.
베드로님과 다른 제자분들이 다들 풀이 죽었지요.
며칠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 때문이었지요.
자기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감당하기에 벅찼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꾸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시는데,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지요.
베드로님은 더 우울했었다고 하더군요.
자기 믿음의 한계를 계속 경험했기 때문이었지요.
예수님과 자기의 격차가 너무나도 크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셨지요.
자기는 걷다가 빠져 죽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말하십니다.
자기는 그런 일은 안된다고 말하다가
사탄 소리까지 듣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모세님과 엘리야님과 대화를 합니다.
자기는 정신을 못차리고 딴 소리만 하는 믿음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자기는 그 음성이 무서워서 죽은 사람처럼 되는 믿음이지요.
믿음이 적고, 삐뚤어진 세대가 자기임을 너무 알았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에는,
뭔가 스승으로부터 배워서 발전하는 부분이 있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지금와서 보면
오히려 스승을 따라 잡는 것이 아니라
그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만이 보이는 것이었지요.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마음에 우울했다고 했지요.
가버나움에 들어갈 때도 그랬다고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과는 거리를 좀 두고,
다른 사도분들과 길을 걷고 있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과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그들이 도발적으로 말했다고 했지요.
“당신들의 선생님 성전세가 미납입니다.
나사렛 지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마 성전세를 내실 마음이 없으신가 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쁘셔서 그랬지요.
당장 낼 것이니 그리 아세요.”
베드로가 홧김에 말을 뱉었다고 했지요.
그리고 돌아서는데 재정을 관리하는 가롯유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지금 당장은 돈이 없는데,
왜 그리 급하게 말을 했는가?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하던지 하지.”
베드로님이 그 말에 놀랬지만,
그냥 큰 소리만 쳤다고 했지요.
“걱정마시게나,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되네.
성전세는 채워져라!”
가롯 유다는 그 말을 들으면서 황당해했고,
다른 사도분들은 듣고 웃었다고 했지요.
예수님은 들으셨는지 안들으셨는지
멈추지 않으시고 길을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이 베드로님을 불렀다고 했지요.
“시몬,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세상의 왕들은 누구에게 세금을 받습니까?
자기 아들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요?”
베드로님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했지요.
“어떻게 자기 아들에게 세금을 받습니까?
세금은 남들에게 받아서,
자기 아들들에게 그 돈을 주면 주겠지요.
아들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했다고 했지요.
“그렇군요.
성전세는 하나님의 백성이 내는 세금입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요.
그럼 아들의 입장에서 성전세를 내지 말아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님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고 했지요.
“말씀은 맞으신데, 그러면 좀 물의가…”
그러자 예수님도 웃으면서 말했다고 했습니다.
“하하하, 너무 놀라지 마세요.
웃자고 해 본 말입니다.
성전세를 걷는 이들은 지금 내 말을 이해할 수가 없지요.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볼까요?
자, 시몬, 어부 시절의 실력을 발휘해봅시다.
가서 낚시를 해보세요.
그리고 가장 먼저 잡은 고기의 입을 열어보세요.
거기 은화 한개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나와 당신의 성전세를 냅시다.
당신과 나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지요.
그리고 생선을 몇 마리 더 잡아오세요.
오늘 저녁은 매운탕입니다.
시원하게 먹고 얼큰한 국물에
스트레스도 풀어봅시다.”
베드로님이 이 말씀에 다시 힘이 났다고 했지요.
이렇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내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나도 당신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대해주시고 있어!
내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을 가지도록 구해야겠다.’
그리고 다른 제자분들에게 이 대화를 전했다고 했지요.
우울했던 제자분들이 힘이 났다고 햇습니다.
물고기에서 나온 은화가 또 다른 계시가 되었지요.
계시가 계속 이어지면서,
제자분들이 사람이 한계를 넘는 믿음을 열망하고
구하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멍에를 조정하시는 방법이군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은 사람의 마음의 법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이 자비의 법으로 부지런히 개정을 해야만 예수님을 계속해서 따를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계시가 오히려 내 믿음을 흔들게 되고 넘어지게 하지요.
하지만 이 개정은 법의 사람의 힘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로 금식으로 구해야 합니다.
자 이제 이어지는 부분은,
누가 읽어볼까요?
이제 늦은 오후라 조금 졸린 시간이군요.
우리 목소리가 큰 유스도씨가 읽어주시지요.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뒤에서 체격이 큰 남성이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이 유스도가 큰 소리로 읽어드리지요.
여러분의 잠을 깨워 드리리라.”
유스도의 말에 모두 웃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끝-
열 일곱 번째 계단에 올라서서
열 여덟 번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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