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이제 열 두 번째 계단에 올라갑니다.
미리암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1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다윗이 자기 일행과 함께 배가 고팠을 때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4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차림빵을 그의 일행과 함께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 규정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그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7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나는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9 예수님이 그 곳을 떠나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10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를 가졌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끌어올리지 않겠느냐?
12 사람은 양보다 더욱 귀하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13 그리고서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 손을 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가 손을 펴자 완전히 회복되어 다른 손과 같이 되었다.
1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없애 버리려고 의논하였다.
15 예수님이 이 일을 아시고 그 곳을 떠나시자 많은 사람들이 뒤따랐다. 예수님은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16 자기에 대한 소문을 내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단단히 주의시켰다.
17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18 '내가 택한 나의 종, 내가 기뻐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보아라. 내가 그에게 내 성령을 주겠다. 그가 온 세상에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
19 그는 다투거나 소리치지 않을 것이니 아무도 길거리에서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다.
20 그는 진리가 승리할 때까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이다.
21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1절-21절]
여기까지 입니다."
살몬이 말을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도하시지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에 쉼을 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일이 시작되는군요. 먼저 안식일에 일어났던 일이 나옵니다."
너도할례가 일어나서 말을 시작했습니다.
"맞소이다. 지금 읽은 부분의 시작부터 그렇지요.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밭 사이의 이삭을 잘라먹었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바래새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옵니다.
율법과 전통을 따라서 항의하지요.
주목할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서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서 항의하지만
그 말에 놀라서 죄책감이 드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 부분을 기억하면서 계속 나누어 보겠습니다.
사실 제가 바리새인 시절을 말해보면
이 안식일의 규정은 참 까다롭고 힘든 규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방심하면 바로 어기게 되지요.
이 규정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가 쓴 책에 있지요.
[너도할례님과 함께라면 쉽게 외워지는 57개의 안식일 규정]
이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사실 원래 안식일의 율법은 간단합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너희는 안식일에 아무 일을 하지 말라."
"내 안식일을 기억하고, 내 성소를 귀하게 여겨라."
이렇게 세 가지라고 보면 되겠지요.
그런데 이 적용 범위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 민수기에도 나오지요.
누가 안식일에 나무를 자르다가 걸렸지요.
사람들은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몰라서 그냥 가둡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는 기록이 있지요.
자, 생각해보십시오. 자세한 규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식일의 율법을 따라서 사형 집행을 행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겠습니까?
혹시라도 안식일의 규정을 어길 만한 모든 것들을 금지시켜서
안식일의 규정을 완성시키고자 하겠지요.
이 규정이 너무 많아서 외우기도 힘들지요.
그리고 조금만 방심하면 어기기가 일상입니다.
저도 바리새인 시절에는 안식일에는 집에만 있었지요.
안식일만 되면 집을 나가기가 두려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회당은 가야지요.
하지만 갔다가 다시 올 때까지 신경이 쓰이지요.
살얼음을 걷는 긴장감으로 규정만 생각했습니다.
그 때의 저의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을 생각해보십시오.
조금의 실수도 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지요.
이러니 주말은 너무 긴장이 됩니다.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부터 소화도 안됩니다.
신경만 날카로와지더군요.
별 일도 아닌 것으로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는 했습니다.
안식일이 정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었지요.
지금도 모든 유대교인들이 지고 가는 짐입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지금 할례당에서도 안식일의 규정으로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너도할례가 대답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리 할례당이 정리한 안식일의 규정은 달라요.
유대교의 규정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고르고 골라서 겨우 57개 밖에 안됩니다!
기존의 수백가지 규정과 비교해 보세요.
57개의 규정은 정말 가벼운 짐이지요.
할례와 율법은 소중한 것입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안식일의 규정에 눌려서 살았던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지요.
그렇게 큰 짐을 지고 살던 제자들입니다.
이제 배가 고파서 무의식중에 밀을 먹다가 걸렸지요.
바리새인들의 호통을 들었으니 얼마나 오금이 저렸겠습니까?
게다가 예수님이 같이 드셨으면 모르겠는데, 예수님은 안드셨지요.
자기들 때문에 예수님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을 보십시오.
먼저 다윗 왕이 성전의 규정을 어긴 것을 말하십니다.
정말 중요한 규정인 진설병의 규정을 어겼지요.
그런데 아무런 추궁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잠잠하셨지요.
그리고 성전 안에서는 제사장들을 말하십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규정을 어겨도 죄가 아니었지요.
이어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성전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자비를 행해주시는 장소입니다.
성전의 가장 깊은 곳을 지성소라고 하지요.
여기는, 오직 언약궤, 즉 약속의 궤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궤 위에는 바로 속죄소(Mercy Seat-자비를 배푸는 자리)가 있지요.
이곳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실행되는 장소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시고 있지요.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오신 분입니다.
자비의 자리(속죄소)에 앉으셨지요.
왕의 권위로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
성전은 움직이지 않지요.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만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이십니다.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있습니다.
성전은 자격이 되는 사람만 들어가지요.
성전이 있는 지역으로 갈 능력이 되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도 만납니다.
그들을 찾아가십니다.
장소에 갇히지 않고 말씀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거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사람의 마음에 찾아온 것이 됩니다.
이러니 예수님이 성전보다 더 큰 분이시지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성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실행되는 곳에 있지요.
이 법을 실행하는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안식일의 규정에 자유롭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자유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유로운 것이지요.
안식일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워지는 짐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성전보다 더 큰 내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자비의 법을 집행하는 내 제사장들이지요.
그러니 안식일의 규정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말씀이 되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전에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면서(마태복음 9장)
서기관들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다시 인용하셨지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불법을 처단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실행해야 완성이 되지요.
이것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겼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는 무죄가 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만 유죄가 되지요.
이 일로,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의 법정에서 제자들을 심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자기들과 같은 법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 법으로 제자들을 벌주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시지요.
"당신들의 마음의 법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재판하면 이들은 무죄입니다.
그러면, 당신들도 이 법을 적용을 받을 수 있지요."
라고 가르쳐주시고 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사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니 이 말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의 말입니다.
전에 중풍병자를 치유하실 때도 그랬지요.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신 말씀은 그 이상의 모독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이 말씀을 봅시다.
지금 왕의 권위를 가지고도 불법을 처단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이 말씀에 드러나지요.
안식일의 주인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긴 이를 용납합니다.
인자에게 이러한 권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지요.
안식일에 규정에 눌린 사람들이라면
정말 감사의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가르침은 믿는 자들에게 쉼을 줍니다.
특히, 제자들에게 정말 쉼을 주는 가르침이 된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백프로 믿을 때에 가능하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요한 사도님이 마리아님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제자분들이 다 예수님 말씀에 큰 위로를 얻었다고 했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들의 마음의 법을 바꿀 힘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 남은 자기들의 마음의 법 때문에 찜찜함이 계속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안드레님은 그날 밤에 바리새인들에게 끌려가서
회당에서 몽둥이질을 당하는 악몽을 꾸실 정도였다고 했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본격적으로 멍에를 조정하시지요.
지금은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제자분들의 갈등과 두려움이 정말 컸을 것입니다.
이건 바리새인의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택한
너도할례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
너도할례가 그 말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습니다.
"맞소이다.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입니다.
매일 거의 24시간을 내 마음에 법정에 끌려갑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법을 따라서 재판을 받았소이다.
모든 율법과 전통이 나를 고발했지요.
매일 고발과 변호가 이어졌습니다.
사람의 법과 자비의 법의 법정 싸움이었지요.
믿음으로 겨우 안정이 되면 또, 말들이 들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심판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요.
그러면 또 넘어집니다.
다시 법정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솔직히 지금도 자유롭지가 못합니다.
지금 이 서신을 보면서도 재판이 열리고 있지요.
하지만, 뭔가 깨달아 가는 바가 큽니다.
내가 예수님을 왜 믿었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저에게 포도주 한 잔만 주시지요.
그래도, 누가 뭐라 해도 율법과 할례는 소중한 것입니다."
이미할례가 재빨리 포도주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 동안 요한이 너도할례를 위로해주고자 포옹을 했습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너도할례님도 힘내시고, 다들 힘냅시다.
이제 예수님이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나오지요?"
그러자 살몬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의 회당이라고 했지요.
바리새인들의 회당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한 회당이지요.
그런데 그 회당에 한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고 물었지요."
너도할례가 손을 들고 말을 했습니다.
"제가 말을 해보지요.
우리 요한이 덕분에 힘이 납니다.
그리고, 포도주 한 잔에 또 힘이 나는군요.
사실 앞 부분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발이 가능하지요.
그런데 이건 말을 가지고 다뤄야 합니다.
재판이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덫을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율법에 맞지 않다라고 알렸지요.
그리고는, "너 그래도 고칠래?"라고 도발을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고쳐주시면, 알면서도 일부러 율법을 어긴 행위를 한 것이 됩니다.
즉 확실한 범죄 현장이 되고 증인들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지요.
불법을 처단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의 지혜입니다.
그러니 지금 제자분들은 애가 타는 상황이지요.
예수님이 짚더미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불구덩이로 들어갈 상황입니다.
자기들은 말릴 수도 없고 지켜보아야만 하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반응이 궁금했을 것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이 아닌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일을 예로 들어주시지요.
"안식일에 당신의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내지 않을 것인가요?"
라는 질문입니다.
답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끌어내지만 아닌 척하고 앉아있지요.
그들의 마음의 법을 드러내셨지요.
그리고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합니까?
그러니 안식일에도 선을 행하는 것이 율법에 맞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셨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시고 있지요.
그리고 치유하십니다. 법대로 행하셨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또 그들과 한 마음이 된 회당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면서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군요.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자고 의논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시끄럽게 의논을 했으면 소문이 퍼져서
예수님도 아시고 그 지역을 떠나가셨을까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맞소이다. 이것이 바로 박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결단이었지요.
자기들의 마음의 법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자비의 법의 능력도 보았지요.
이들은 전부터 예수님을 그냥 놔두지 않았었지요.
계속 자기들과 같은 마음의 법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또, 협박도 하고 헛소문도 만들어냈지요.
그런데 자기들의 마음의 법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되니 예수님을 없에버리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제 안식일 치유의 건으로 고발을 하려던 계획을 버립니다.
이들은 율법 전문가입니다.
이 고발로는 큰 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더 큰 건으로 재판에 넘겨서 사형시켜야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바짝 따라 다녀야 합니다.
붙어서 예수님을 감시해야 합니다.
이러면, 예수님 옆에 제자분들이 설 틈이 없어지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분들에게 가르쳐주셨던 대로,
발에 먼지를 털고 그 지역을 떠나가신 것이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 지역을 떠나가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겨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다는 반전이지요.
오히려 많은 백성들이 보고 생각했지요.
‘예수님은 불법을 죽이고 벌을 주는 분이 아니구나!’
‘그렇게, 율법을 완성하는 분이 아니시네?’
‘지금,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율법을 완성하시는데?’
이런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온 많은 사람들의 병을 다 고치셨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병이 원인이 무엇이 되었던지, 예수님은 왕의 권위로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있지요.
이 확신이 그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이지요.
그러니 제자들도 여기에서 큰 깨달음과 자유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의 멍에를 조정해 주심도 경험하고 있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병을 다 고치시고,
어차피 소문은 다 날 것인데,
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을까요?
그 답은 이어지는 선지자 이사야님의 예언의 글에 있는 것인가요?"
너도할례가 대답했습니다.
"허허 맞소이다.
제가 이사야님의 예언서의 전문가지요.
이 너도할례가 쉽게 설명해보겠소이다.
자, 먼저 이 구절을 봅시다.
[내가 택한 나의 종, 내가 기뻐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보아라.
내가 그에게 내 성령을 주겠다.
그가 온 세상에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
라는 구절입니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는 말이 있지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예수님이 세레를 받을 때지요.
그 때에 하늘에 울려퍼진 음성이입니다.
그리고 성령도 비둘기와 같이 내려왔지요.
[마태복음 3장 참조]
그런데 이 예수님을 택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추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내신 종이지요.
그리고, 추수하는 일꾼의 리더임을 말해주십니다.
다시 말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택한 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십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신다고 합니까?
이방에게 심판을 알게 한다고 하셨지요.
사실 심판은 불법을 벌하지요.
또, 불법자들을 처단합니다.
그래서 법을 온전하게 이루는 행위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알게 하신 심판은 무엇일까요?
바로 죄를 용서하고자 열리는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 하나님의 거룩한 자비의 법을 따른 심판이지요.
즉 왕의 권위를 가진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자비를 베푸는 자리입니다.
그 법의 적용을 믿고 그 법대로 살았던 모든 죄인들이 무죄를 받게 해주는 심판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알리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방에게, 온 세상에 알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알리시는 방법을 볼까요?
[그는 다투거나 소리치지 않을 것이니
아무도 길거리에서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는 진리가 승리할 때까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 것이다.']
라는 방법이지요.
논쟁과 다툼과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병고침을 받은 이들에게 경고하셨지요.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를 볼까요?
만일에 예수님이 병고침을 받은 이들에게
"나를 알리시오! 내가 메시야라는 소문을 내시오!"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박해를 피해서 나온 그 지역으로 돌아가서(자기들 사는 곳이니)
그 바리새인들과 다툴 것이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숫자상으로나 기세로나,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강하지요.
박해받던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다수가 되는 순간
이들이 박해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바리새인들을 박해할 것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오히려 말리셨지요.
상한 갈대이고 꺼져가는 등불은 누구입니까?
아직도 사람의 마음의 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사람들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 앞에서 심판될 사람들입니다.
아직은 살아 있고 죽지는 않았지요.
이들에게 혹시라도 마음을 바꿀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신다고 하셨지요.
그러니 마지막 날, 최후의 심판은 어떠한 모습이 될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그 법을 믿은 사람들을 분리하십니다.
그 법을 자신의 마음의 법으로 바꾸고
그 법으로 살아온 모든 죄인들에게 무죄를 선포하시지요.
하나님은 예수님이 선포한 이 무죄가 옳다라고 인정하십니다.
그렇게, 모든 인류가 보는 곳에서 예수님이 이기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도 봅니다.
예수님이 자비의 법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보지요.
또 그 가르침을 듣습니다.
그러면 이들도 확신을 가지게 되지요.
자기들도 이 예수님에게 가면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라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오늘 모든 교회에서 나타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너도할례가 말을 마치자 다들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아니, 너도할례님은 이렇게 잘 아시는구요!
그런데, 왜 할례당의 중진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어허, 아직 서신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반도 안왔어요.
어쨌거나, 율법과 할례는 소중한 것입니다."
다들 웃는데 살몬이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그렇게 들뜬 분위기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미리암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러자 미리암이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 계속 가볼까요?
22 그때 사람들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예수님이 그를 고쳐 주시자 눈먼 벙어리가 말도 하고 보게 되었다.
23 그러자 사람들이 다 놀라 '이분이 혹시 다윗의 후손이 아닐까?' 하고 말하였다.
2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은 귀신의 왕 사탄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낸다.' 하였다.
25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싸워 갈라지면 망하고 그 어떤 마을이나 집안도 서로 싸워 갈라지면 오래가지 못한다.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이미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것이니 그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설 수 있겠느냐?
27 내가 사탄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너희를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될 것이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9 강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털어가려고 하면 먼저 그 사람을 잡아 묶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 집을 털 수 있겠느냐?
30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
31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에 대한 모독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32 누구든지 나를 욕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을 욕하는 사람은 이 세대나 오는 세대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33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35 선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선으로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악으로 악한 말을 한다.
3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은 함부로 지껄인 모든 말에 대해서 심판 날에 해명을 해야 한다.
37 네가 한 말에 따라서 네가 무죄가 되기도 하고 유죄가 되기도 할 것이다.'[마태복음 12장 22절-37절]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제자분들의 멍에를 조정하십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에 쉼을 얻고 있지요.
그리고 이제 귀신이 들려서 장님이 되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지요.
그러자 무리가 놀라서, "이분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했지요."
이미할례가 말했습니다.
"제 스승이신 너도할례님에게 배운 바가 있지요.
아, 그런데, 제가 말을 해도 될까요?"
이미할례가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다고 놀라서 말을 멈춥니다.
그러자, 살몬이 웃으면서 계속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안심하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살몬님의 말을 끊은 것이라면 죄송합니다.
음,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는 말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그 다윗의 자손이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확신의 표현이지요. 그런데 이 확신이 백프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신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 왕과 같은 권위를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는 일에 쓰지 않고
죄의 용서와 치유에 쓰고 있으니,
반신반의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해석해 봅시다.
예수님은 백프로 다윗의 자손 메시야입니다.
또, 사람의 마음의 법으로 해석해 봅시다.
메시야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예수님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주변에서 가장 성경을 잘 안다는 사람들에게 갔겠지요.
그들이 누굽니까?
바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좋은 답이 나올 수가 없지요.
그런데 성경으로는 상대가 안됩니다.
아무리 봐도 예수님을 반박할 수 없지요.
그러니 성경에도 없는 답을 찾아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답이 이 말입니다.
"예수라는 자는,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확인해 보니,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입니다.
마치 무당이 쎈 귀신의 힘을 빌려서
더 힘이 약한 귀신을 내보내는 것이지요.
예수라는 자는 우리 아도나이 신앙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만들어내서 믿고자 하는 사람도 믿지 않게 만들고 있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이미할례님은 말을 할 때는 참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미할례가 부끄러워하면서 말했습니다.
"다 스승이신 너도할례님에게 배운 것입니다."
너도할례가 만족한 듯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했습니다.
"허허, 무슨 말인가?
다 자네 안에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지.
내가 부끄럽구만."
다들 "오~"라며 놀란 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의외라는 듯이 너도할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왜들 이러시나요?
나도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는 제자입니다.
그건 그렇고,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 논란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지 않으셨지요.
오히려 가르침을 주셨지요.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싸워 갈라지면 망하고
그 어떤 마을이나 집안도 서로 싸워 갈라지면 오래가지 못한다.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이미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것이니
그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설 수 있겠느냐?
내가 사탄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너희를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상한 갈대가 되었지요.
그리고 꺼져가는 불이 되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왕의 권위로 꺽지 않습니다.
그 불을 끄지 않으셨지요.
오히려 어떻해든지 살려보고자 하십니다.
그 자비에서 나오는 가르침이지요.
여기서 보면 예수님은 사탄이라는 표현을 쓰시고,
바리새인들은 귀신이 왕, 바알세불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사탄은 유대교와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귀신의 대장이고,
바알세불은 우리 이스라엘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지방에서 귀신의 왕으로 통하는 이름이지요.
그러면 왜 바리새인들은 우리 종교에 익숙한 사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타 종교의 개념인 바알세불을 가져다 썼을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너도할례가 신이 나서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건 참 밝히기가 힘든 루머입니다,
제가 바리새인 시절에 들은 루머지요.
동방의 한 나라에서는 찌라시라고도 표현할 단어입니다.
어쨌거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였지요.
가리고 가린 지혜자들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신 분들이지요.
이들이 3박 4일로 비밀 모의를 했다고 합니다.
목적은 예수님의 치유와 축사를 공격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나도 성경적 이었지요.
아무리 성경을 뒤져도 공격할 거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바리새파에서도 축사를 합니다.
이들도 귀신 쫓아내는 사역을 가르치지요.
또 배워서 행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이들과 예수님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내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논의 끝에 결론이 나왔지요
1) 예수님은 다른 종교의 무당들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무당파라는 프레임을 씌우자.
2) 바리새파의 축사자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귀신을 쫓는 거룩한 자들로 차별화를 두자.
3) 설명할 때는 반드시 예수는 사탄의 힘으로 일한다라고 말하지 말자.
딱 들어도 페니키아와 팔레스타인 무당 느낌이 나오는 바알세불의 힘으로 일한다고 설명하자!
이 방침을 따라서 소문을 내기로 한 것이라고, 그런 설을 들었소이다.
진위는 확인할 수가 없지요.
이건 제가 쓰고 있는 책에 나옵니다.
[예루살렘 찌라시, 너도할례는 풍문으로 들었소]
라는 책에 나올 내용입니다.
곧 개봉박두이니 기대하세요."
그러자 누군가가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음모를 파악하셨다는 말인가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서 믿는 사탄이라는 표현을 쓰셨지요.
그리고 사탄이 사탄을 쫓아낸다고 말하십니다만,
이게 지금 짧은 시간에 설명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라,
지금 내용이 길어지니 우선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속마음을 드러내셨지요.
제 딴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런 말씀입니다.
"당신들은 나에게 무당파의 프레임을 씌웠소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축사와 당신의 제자들이 하는 축사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먼저 밝혀주시오.
아니 그러지 말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바리새파 축사 사역자들이
나의 축사를 보고 당신들의 주장을 공개 재판해 보도록 합시다."
라는 말입니다."
너도할례가 말을 마치자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위협하지 않으시지요.
자기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깨달으라고 말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들이 그렇게 연구해서 나의 축사 사역이 성경적인 것을 깨달았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온 것입니다.
그러니 보고 깨닫고 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 참여하세요."
라고 초청하고 있지요."
에스더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강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털어가려고 하면
먼저 그 사람을 잡아 묶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 집을 털 수 있겠느냐?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
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됩니까?"
살몬이 말했습니다.
"내 마음에는 내 마음의 법이 있습니다.
이미 자리 잡은 이 법은 강한 자입니다.
사람은 이 마음이 법을 어길 수가 없지요.
몸으로는 다른 법에 복종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마음의 법을 결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들어갈 수 있다지요.
자기 마음의 법을 결박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그 강한 자가 살아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할 수가 없으니 반대하는 자가 되지요.
예수님과 함께 모을 수가 없고 오히려 헤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이어집니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에 대한 모독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욕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님을 욕하는 사람은 이 세대나 오는 세대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지요.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를 받는다고 말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왜 일까요?
왜냐하면 성령을 모독한다는 말은 이미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고 나서도 믿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고도
또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알고도 거부한 사람이
어떻게 그 법의 적용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 같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말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용서의 대상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를 끝까지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절대로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하셨지요.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잘 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의 권세를 가진 사람(인자)라는 것도 압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그 권세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자기는 알고 있으면서도, 이 왕의 권세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거부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법이 적용될 수가 없으니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예를 들어볼까요?
로마 제국을 봅시다.
로마제국은 로마의 법을 인정하고 지키는 사람들은 받아줍니다.
하지만, 그 법을 인정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서
스스로 거부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충동질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로마 제국 밖으로 추방하거나 가두거나 죽여지요. 같은 논리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가르쳐주시고 있군요.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말하셨지요.
그렇게 마음의 법이 드러난다고 하십니다.
그 법은 자기 입으로 나오는 말이 된다고 하셨지요.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선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선으로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악으로 악한 말을 한다.]
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악한 말과 선한 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선과 악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의미지요.
그런데 이것을 구별하는 그 기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으로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말, 즉 선한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악한 말은 무엇일까요?
이 선한 말,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서 나오는 말을 대적하는 말들이지요.
자기 마음의 법을 따라서 나오는 말이 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의 소문이 악한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 말로 심판이 된다고 말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과 연결이 되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내 마음의 법을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바꾸고 또 채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을 쌓으니 그런 말이 나오지요.
반대로 자기 마음의 법을 그대로 간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쳐 주시는군요.
그리고 이런 말들은 결국은 내가 생각없이 뱉는 말로 드러나게 되있고,
심판의 날에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심문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심문을 받으면 대답을 해야 하지요.
처음에는 변명이 나오겠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진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재판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고 안 믿고 대적했습니다."
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선을 쌓은 사람은 천국에 거합니다.
하지만 말로 그 법을 대적한 사람들은 정죄,
즉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이 되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그 다음을 읽어볼까요?"
그러자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좀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요."
살몬이 알았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미리암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38 그때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 몇 명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나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
40 요나가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나도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다.
41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할 것이다. 자, 보아라. 요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여기 있다.
42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남방 여왕도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한 것이다. 자,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여기 있다.
43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44 그래서 귀신이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하고 가 보니 그 집이 비고 깨끗이 소제되고 정돈되어 있었다.
45 그 귀신이 가서 자기보다 악한 다른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가 거기서 살자.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46 예수님이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찾아왔다.
47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선생님, 어머니와 형제분들이 선생님을 만나뵈려고 밖에서 기다립니다.'하였다.
48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어머니와 형제가 누구냐?' 하시고
49 제자들을 가리키며 '보아라. 이들이 네 어머니와 형제들이다.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와 자매이며 어머니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2장 38절-50절]
여기까지만 읽겠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는데, 이미 표적은 계속 보여주시지 않았나요?
왜 또 표적을 구한다는 것입니까?"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이들이 구하는 표적은 그냥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다윗의 자손이 확실하다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말이지요.
예수님은 이들이 표적을 구하는 이유는 믿기 때문이 아니라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주셨지요.
악하다는 말은 앞에 나왔지요.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지요.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악하지요.
음란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보았지요.
그리고 이 자비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그 법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돌아서서는 내 마음의 법을 더 사랑합니다.
이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지요.
요나 선지자님이 큰 물고기 뱃속에 삼일 있던 것과 같이
인자도 땅 속에 삼일 있으리라고 하셨지요.
이것은 부활의 표적을 말해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백프로 믿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 법을 따라서
죽음에서 살아나는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인자라는 사실을,
즉 하나님으로부터 왕의 권위를 받은 사람임을 확인해 주시는 표적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법을 따라서는 절대로 나타날 수가 없는 능력이고 표적이지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니느웨 성은 걸어서 삼일이 걸리는 성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왕복으로 하루만 돌았지요.
그들이 모르는 히브리어로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그런, 요나의 선포를 듣고도 모두 회개를 했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적용받아서 용서받았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온 이스라엘 사방을 다니고 계십니다.
요나 님보다 더 큰 인자, 왕의 권능을 가진 분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세대는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는 세대이니
정신 차리라고 말씀하시고 있지요.
솔로몬 왕의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이 사실을 믿은 남방 여왕이 있었지요.
그것을 확인하고자 먼 길을 옵니다.
그리고 지혜의 말을 듣고 믿었지요.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예수님은 하지만 이 세대는 다르다고 하셨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알면서도,
거부한 사람들이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그리고 이 악한 세대가 어떻게 될지를 말해주십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나누고 싶군요.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귀신이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하고 가 보니
그 집이 비고 깨끗이 소제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 귀신이 가서 자기보다 악한 다른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가 거기서 살자.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축사를 공격했지요.
그러자 예수님도 축사의 비유를 들어주십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 마음의 법이라고 해봅시다.
이 마음의 법이 쫓겨납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온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 의해서 쫓겨났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자비의 법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집은 청소되고 수리는 되었는데 비었지요.
즉, 예수님으로 인해서 내 마음의 법이 쫓겨나도
내가 내 마음을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채우지 않으면,
그 마음은 빈 집과 같다고 말해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악한 세대는, 이미 하나님의 자비의 법보다
내 마음의 법을 더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진 세대입니다.
이 빈 집에는 다시 내 마음의 법이 돌아오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다시 돌아올 때에는 더욱 악해져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온 몸으로 거부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비유로 말해주신 것이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치유와 축사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런대도 돌아서서는 어떠합니까?
내 마음의 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비의 법을 거부할 이유를 찾아 말을 하지요.
내 마음의 법을 더 사랑합니다.
눈은 내 마음의 법만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이러니 다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어 질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배우고 알았다면,
당장 그 법으로 내 마음의 법을 채우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안그러면 내 마음의 법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밀어내고,
오히려 더 거부하게 될 것을 말해주셨지요."
그러자 일리마가 말했습니다.
"맞소이다. 살몬님의 말씀대입니다.
이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힘을 냅니다.
우리는 내 마음의 법을 바꾸기로 결단한 사람들었지요.
그래도 순간 순간 마음에 전쟁이 끊이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더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법을 더 사랑할 것인가?
바리새인들과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들이 내 마음의 법으로 돌아가도록 몰아세웠지요.
그리고 그 때마다 우리는 옛 마음의 법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예수님이 아셨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로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더 사랑하고
그 법으로 마음의 법을 바꾸라고 잡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내 사람이고 내 가족이라고 가르쳐주셨지요.
정신을 차리게 하고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가르침이지요.
이어지는 말씀이 그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예수님이 이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가족들이 오셨지요.
그런데 이 가족 분들이 안으로 들어오시지는 않습니다.
밖에서 예수님께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지요.
제가 마리아님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가족들은 응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루머를 듣고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려서 미쳤다는 말이었지요.
죄인들과 매일 술자리에서 탐식을 한다는 말입니다.
안식일과 율법도 지키지 않는다는 소문입니다.
이 말들이 너무 들려와서 온 것이라고 했지요.
사실 마리아님은 예수님을 아시지요.
그래서 무슨 악한 소문이 들려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생 분들은 달랐지요.
이 동생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들이 매일 장터에서 예수님의 루머를 듣지요,
그리고 마리아님에게 보고를 합니다.
밥먹을 때마다 대책회의를 한다고 떠들어 댑니다.
자꾸 듣다보니, 마리아님도 마음이 흔들렸지요.
그래서 같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들 앞에서 루머를 말하기가 좀 민망하지요.
또, 집으로 가자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같은 동네에서 청년을 만났지요.
그리고 그에게 부탁을 했다고 했지요.
이제 밖에서 조용히 만날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쭈삣쭈삣 돌아왔지요.
그리고는 민망해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거, 선생님에게 제가 말씀은 드렸어요.
그런데, 아 선생님께서 저에게 물으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동생들입니까?"
제가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답을 못했지요.
그랬더니 당신의 제자들을 가르키셨지요.
그리고는 말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지요.
누가 되었던 그 사람이 내 형제입니다.
내 자매고,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하시네요.
선생님을 못 모시고 와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했지요.
예수님의 동생들은 그 말로 화를 냈다고 했지요.
하지만 마리아님은 그 말씀을 바로 깨달으셨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을 꾸짖으셨지요.
그들을 잠잠하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있는 집으로 가셨지요.
그분의 그 말씀을 다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예수님을 만나서 인사를 하셨지요.
예수님을 앉아주시고, 이야기도 듣고 나셨지요.
같이 식사도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소개를 받으셨지요.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지요.
예수님도 조만간 집에 들리시겠다고 하셨구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네, 지금 이 서신의 흐름이 이렇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아직 갈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멍에를 조정해주시고 있지요.
먼저는 침례요한 선지자님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이지요. (11장)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12장)
바리새인들의 '예수 무당설'에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백성들(12장)이며
예수님의 어머니와 가족들이고 (12장)입니다.
또 바리새인들과 그 무리들도 버리지 않으시고
이 멍에를 지도록 초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내 마음의 법으로 바꾸고 채우는 사람이
내 가족이라고 가르쳐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내 마음의 법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을까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그런 내용이 이어지겠지요.
계속 읽어보도록 하지요.
이미할례님이 다시 읽어주실까요?"
이미할례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12장 끝-
열 두 번째 계단에 올라
열 세 번째 계단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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