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장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조금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이른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살몬이 말했습니다.
"자, 이제 마태사도님의 서신을 계속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은 제가 하도록 하지요. 시작합니다.
1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불러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허약한 체질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2 이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렇다. : 베드로라는 시몬, 시몬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의 형제 요한,
3 빌립, 바돌로매, 도마, 세무원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4 가나안 사람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판 가룟 사람 유다였다.
5 예수님은 이 열 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6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과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거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왔다.'고 전하여라.
8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돈은 일체 가지고 가지 말아라.
10 여행 가방이나 갈아 입을 옷이나 여분의 신발이나 지팡이도 갖고 가지 말아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11 어느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기꺼이 영접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 너희가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2 너희는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어 주어라.
13 만일 그 집이 너희 평안의 축복을 받을 만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마을을 떠날 때 신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려라.
15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그 마을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16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떼 속으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여라.
17 사람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 주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서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내 증인이 될 것이다.
19 그러나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길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말아라. 그때에 너희가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20 이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마태복음 10장 1절-20절]
우선은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님들을 세우시는군요.
바로 앞에 나온 추수하는 일꾼[신천지 추수꾼 아님!] 들입니다."
너도할례가 말합니다.
"이분들은 모두 저희들이 들어온 이름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고, 그분들의 이야기도 들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사도님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집행하기 위한 왕의 권능이지요.
죽음과 심판의 법을 따라서 오는 악을 쫓아내는 권능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위입니다. 예
수님은 당신이 가지신 왕의 권위를 나누어주십니다.
이 모습에 주목해야지요."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님들에게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나요?
지금의 교회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여기 예루살렘 교회만 해도 순수 유대인, 유대인 혼열, 외국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모든 성도가 이스라엘처럼 할례를 받으라는 의미지요.
또 율법을 지킴으로써 한 이스라엘 민족이 되라는 말이 아닐까요?."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들이 더 필요하다고 하셨지요.
일꾼이라면 먼저 자기 주인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야훼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가르침을 믿는 믿음을 더해야지요.
지금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성경을 통해서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이들에게 우선 선택권이 있지요.
하나님은 새 포도주 부대가 되어서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선택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이라는 말은,
사도들과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자비의 법으로 삶을 채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되지요.
이 내용이 반드시 나올 것 같군요.
지금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르는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셨지요.
예수님의 이 자비의 가르침을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법을 왕의 권능으로 실행하라고 하셨지요.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립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자비의 법을 따라서 행하신 기적들과 같은 일들입니다."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요한님의 말이 맞군요.
그래서 사도님들에게는 "일꾼이 자기 먹을 것 받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이 보내주실 다른 일꾼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 있도록,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고 하신 것이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법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요.
예수님은 그들은 사도님들을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심판을 받으리라고 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적용을 의심하고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발에 먼지를 떨어서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지요.
심판 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그들보다 낳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보고도 거부했지요."
그러자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님들에게 권능은 주셨지요.
그런데 왜 박해를 싸워서 이길 능력은 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너도할례가 대답해주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요나단씨.
박해를 이기려면 상대를 압도해야 합니다.
박해라는 것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나오지요.
다른 생각, 가치관, 피부색과 같은 외모가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 가치관을 가지게 하려 하지요.
심리적,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 강제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래도 안 바꾸면 내가 사는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이 논리를 따라서 박해를 이기려면 어떻해야 합니까?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박해해야 합니다.
그들을 더 압도해서 강제로 나에게 맞추도록 해야지요.
아니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만드는 방법 뿐입니다.
우리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런 박해의 연속입니다.
물론 우리도 잠시나마 다른 나라를 박해한 시절이 있지요.
그런데 만일에 사도님들이 이런 방식으로 박해하는 이들과 싸우면
더 이상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정죄와 심판의 법으로 싸워서 이기는 방법이
박해를 이기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사도님들은 양이라고 합니다.
그 박해하는 무리는 늑대들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박해하는 사람들의 말에 눌리지 않도록 믿음으로 서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지혜롭게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들과 맞서 싸우게 되어서
그들처럼 순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지요.
이 박해와 핍박은 공회와 회당에서 나타날 것을 말하십니다.
그 주체가 유대인들이 될 것을 말해주셨지요.
하지만 내 마음의 법으로 맞서 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 박해로 인해서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지요.
그 이유는 이 유대인들이 사도님들을
총독들과 임금들 앞으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님들의 위치에서는 절대로 만날 가망성이 없는 높은 사람들입니다.
박해를 통해서 그들을 만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지도자들을 만나면 성령님이
사도님들의 입을 통해서 말해주실 것도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무엇인지를 증거하고 가르칠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면 더욱 많은 일꾼들이 모일 기회가 생깁니다.
음... 참 말이 되는군요.
그런데 이러면 우리 할례당의 주장과 좀 연결이 안되는군요.
음..."
너도할례가 우물쭈물하다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살몬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너도할례님, 생각을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읽어볼까요?
21 또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며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가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마을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괴롭히거든 다른 마을로 피하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너희가 이곳 저곳으로 피하며 이스라엘의 마을들을 다 다니기 전에 내가 올 것이다.
24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
25 제자는 스승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종은 주인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들이 집 주인인 나를 사탄이라고 불렀으니 너희들에게야 오죽하겠느냐?
26 그러나 너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감추어진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27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말한 것을 밝은데서 말하고 너희 귀에 조용히 들려 준 것을 옥상에서 큰 소리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몸을 지옥에서 다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동전 몇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30 하나님은 너희 머리카락도 다 세고 계신다.
31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하다.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왔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다투게 하려고 왔다.
36 그러므로 사람의 원수는 자기 식구가 될 것이다.
37 나보다 자기 부모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적합하지 않으며
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 역시 내 제자로서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생명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41 누구든지 예언자를 영접하면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며 의로운 사람을 영접하면 의로운 사람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아주 보잘 것없는 사람이지만 그가 내 제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10장 21절-42절]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요한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앞에 말씀하신 너도할례님의 설명이 맞습니다.
이 말씀과 바로 연결이 되는군요.
가족들이 가족들을 대적하는 상황입니다.
이 일들은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 겪은 일들이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의 미움을 받을 것도 말하셨지요.
하지만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우리 예루살렘 교회만 봐도 그렇지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교회의 기적들과 선행은 칭찬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가르침에는 반발했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미워하고 박해를 했지요.
지금도 알게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라는 말은 싸우라는 말이 아니지요.
처음 가르침,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자리 잡은 그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지요.
즉 새 포도주 부대에 새로운 포도주를 넣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박해하는 곳에서 버티고 있지 말라고 하셨지요.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일꾼들을 부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동네를 다니기도 전에 인자가 오신다고 하십니다.
그러시고는 제자가 선생과 같으면 충분하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마음, 생각,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의 법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정의해주십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속에 있는 진짜 마음이 법이 드러난 사람들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너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감추어진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는 말씀이지요.
진리의 빛인 자비의 법이 사용되는 곳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의 법이 스스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을 마치자 너도할례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이거 요한이의 말을 들으니 저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말한 것을 밝은데서 말하고
너희 귀에 조용히 들려 준 것을 옥상에서 큰 소리로 전파하라.]
이 말씀을 보십시오.
어두운 곳에서 이르시고 귓속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렇게 몰래 가르치시지 않았지요.
오히려 무리가 듣는 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혹시 따로 가르침을 주셔도 그 가르침을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 같아도 사람을 만나면 이런저런 일들을 나누지 않습니까?
비밀은 없지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
어두움, 즉 깨닫지 못한 상태로 들었었다는 말이 됩니다.
또, 귓속말로 들었다?
이 말씀은 나에게 직접 말씀 해주시는 말이 되지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에게 직접 말씀해주셨던
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깨다고 이해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대로 밝은 곳에서 그리고 옥상에서
모두가 보고 듣도록 선포하라는 말씀이됩니다.
마음의 법을 바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내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으면 무서워서 못합니다.
땅의 생각을 따라서,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가진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과 영혼을 (죽이지 않으시고)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도님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시네요.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하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는 말씀이 되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채운 사람은 그 법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같은 말을 하지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인정하는 말이 됩니다.
내 마음의 법이 있는 사람은 그 법을 말하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말하지 않게 되지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날에 똑같이 해주신다고 하셨지요.
이건 경고가 아니라 격려입니다.
사도님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는 약속의 말씀이지요."
살몬이 말했습니다.
"미리암이 아주 잘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자비의 법이
내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에 충만하다는 것이 드러나는말과 행위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을 보십니다.
그리고 이 자비의 법이 선포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의 법을 드러내지요.
그리고, 선택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기로 선택 하면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칼을 들고 위협하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칼을 들 기회를 주신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세상에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땅에 자비의 법을 따른 평화를 주고자 왔지요.
그런데, 막상 세상은 칼을 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르고자 하지 않으니 검을 들게 됩니다.
그 법을 대적하는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끼리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너도할례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렇소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집이 평온하기를 원하지요.
누구도 다툼과 불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불편한 상황입니까?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대립이 되지요.
그러면 누군가가 먼저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해야 집안이 조용해지겠지요.
문제는 칼을 든 세상의 생각은 믿는 사람이 자비의 법을 포기하지 전까지는
칼을 내려놓을 마음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자비의 법을 타협하고 양보하는 순간,
예수님을 따르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이어서 나오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이 되지요."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무슨 뜻입니까?"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교회에서 십자가는 아주 좋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말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시기는 아닙니다.
아직 아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모를 때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 아직 말하지 않았지요.
그러니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내가 엄청나게 흉악한 죄인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 형을 선고받은 것이 되지요.
이제 그 형벌을 집행됩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를 지고 나갑니다.
그런데 사형집행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의 길을 걷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지요.
다시 설명해볼까요?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무엇인가요?
바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따라갑니까?
내가 먼저 그 자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절실함을 가지고 따라가야 하지요.
그러면 이 자비의 절실함이 어느 정도가 되 할까요?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의 절실함을 말하십니다.
나를 무죄로 바꿀 수 있는 왕을 향한 절실함입니다.
이 자비가 없으면 나는 죽음이라는 절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절실함이 없으면 안되나요?
이 절실함이 없으면 핍박의 시기에 타협하지요.
양보하면서 자비의 법을 포기하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화목이 하나님의 자비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절실함을 가진 사람을 예수님이 설명하십니다.
이들은 자기 목숨을 버린 사람이라고 말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위해서,
즉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그 법을 따라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해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원수가 될 지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실 추수하는 일꾼들이
새로운 가족들이 될 것도 가르쳐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건 요한이가 말해주게나."
요한이 흔쾌히 대답하면서 말했습니다.
"네 좋습니다.
사도님들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대로 나갑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그대로 선포하시지요.
그러면, 그 말씀으로 듣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같은 법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오지요.
이들은 사도님들을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받아들이지요.
그러면 사도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누구든지 예언자를 영접하면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며
의로운 사람을 영접하면 의로운 사람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선지자의 상과 의인의 상은 무엇일까요?"
미리암이 말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자비의 법은 예수님 그 자체지요.
이 예수님을 선지자처럼 받아들이는 사람과
의인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선지자는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예수님의 자비의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은 이에 합당한 상이 있는 것이지요.
선지자의 상입니다.
의인은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행합니다.
예수님의 자비의 법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도 이에 합당한 상이 있습니다.
의인의 상입니다.
그런데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이 어렵습니다."
그러자 살몬이 미리암의 질문을 받아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권능으로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분들입니다.
이 예수님의 제자분들을 제자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래서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무리에게,
"지금 내 제자들이 전도하고자 나가니, 잘 들 챙겨주시오,
냉수는 최소한 에비앙 생수를 준비하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상을 주실 것이오."
라고 은근히 헌금을 강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말하고 계십니다.
즉 사도분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지요.
지금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은 지금 제자분들에게,
"여러분들은 내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작은 자들이라고 생각하지요.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내 제자이니,
선생인 내가 가르친 그대로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전하고 행하세요.
그리고 그 가르침으로 인해서 누가 여러분에게 냉수라도 한 잔 준다면,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고 있다는 말이니 힘을 냅시다."
라는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너도할례가 말했습니다.
"이 살몬님이 낭독한 부분 전체를 제가 나름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이 제자분들을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전하는 일꾼으로 쓰시고자 사도로 세우시고 왕의 권능을 주셨다.
2) 이 사도분들은 일꾼이고, 그래서 일당은 하나님이 주실 것이며, 이들이 나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하면 일꾼이 될 사람들이 자비의 법을 따라서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을 것이다.
3) 하지만 마음의 법을 바꾸지 않을 사람들은 칼을 들고 달려들면서 박해 할 것이다.
4)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사도들의 원수가 될 것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가르친 자비의 법을 포기하지 말거라.
5) 또 한편으로는 사도들이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5) 그들을 보면서 힘을 내라, 그들에게 상이 있음을 알려주어라. 는 말씀이 되겠군요.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몬이 말했습니다.
"저는 많이 읽었고 남자분들이 많이 읽었지요.
이제 여자분들 중에 누가 읽어볼까요?
음, 어디보다, 저기 에스더님은 어떠신지요?"
그러자 맨 앞에 앉아서 집중하고 있던 젊은 여인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저요? 저 말인가요?"
살몬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집중을 하시더군요.
계속 눈이 갔는데 이제 한 번 읽어주시지요."
에스더가 신이나서는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었어요.
어디서 부터 읽으면 되나요?"
앞으로 나온 에스더에게 살몬이 읽을 부분을 가르키면서 말했습니다.
"여기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자 에스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끝-
열 번째 계단에 올라서서 열 한 번째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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